눈물의 연평도 - 최숙자(김문응-강남풍 작사 김부해 작곡)..주간한국 창간호(1964.9.27) <히트가요 톱10 중 4위곡> 한국판 빌보드 챠트가 매긴 인기가요 순위
2019.04.10
<주간한국 톱10> (창간호 1964.9.27, 20쪽)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 주의 순위)
1. * <동백아가씨>(1) 이미자
2. * <라노비아>(2) 토니 달라라
3. + <맨발의 청춘>(4) 최희준 라
4. - <눈물의 연평도>(3) 최숙자
5. + <목포의 눈물>(8) 이난영
5.++<나이도 어린데>(0) 질리오라 칭케티
6. + <라노비아>(10) 정시스터즈
7. - <이정표>(6) 남일해
8. - <떠날 때는 말없이>(7) 현미
9. * <맨발로 뛰어라>(9) 남일해 최희준
10. * <보고싶은 얼굴>(10) 현미
클릭 후 재생
崔淑子 - 눈물의 연평도
金文應(江南風)작사 / 金富海 작곡
(1962~3년으로 추정) 신세기 10인치 LP,
SLB-10374/ 황금심 황혼의 이별가 中 B면 T-2
1.
조기를 담북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2.
태풍이 원수드라 한많은 사라호
황천간 그 얼골 언제 다시 만나보리
해저문 백사장에 그 모습 그리면
등대불도 깜박이네 눈물의 연평도
<눈물의 연평도>는 태풍 사라로 희생된 어부들을 추모하는 노래입니다.
1959년 9월 17일(木) 추석 명절날 아침,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간 태풍 사라는 사망 실종자 849명, 이재민 37만 3459명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낸 1904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그때까지 한반도에 불어 닥친 태풍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그런데 사라호가 일어난지 만 5년이 지난 뒤에 이 노래가 널리 불리워졌다는사실을 그동안 저도 무척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노래의 탄생 배경에 관한 아래의 글을 보고서는 그 의문이 오히려 조금 더 증폭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최초로 녹음되었다는 아래 10인치 LP레코드의 발매연도에 따른 혼란 때문입니다.
1962~3년으로 추정.. 10인치 LP레코드(신세기,SLB 10374/ 황금심 황혼의 이별가 中 B면 2번 째 곡)
최숙자 - 눈물의 延坪島..태풍 사라에 지아비를 잃은 아낙네의 슬픈 恨이 서린 노래
연평도 조기잡이 도중 사라호 태풍으로 순직한 어부들을 기리기 위해 5년 뒤 1964년 <눈물의 연평도>라는 노래가 나왔다.
사라호 태풍 30주기를 맞이한 1989년 9월 가요무대에서 회자된 영상을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최숙자가 2012년에 세상을 떠나자 (1941년 ~ 2012년 1월 6일) 추모영상으로 가요무대에서 자료 화면으로 내보낸 적이 있다. -- 자료 발췌: 나무 위키
https://alzade.tistory.com/2090
이 노래는 1959년 추석날 인천 옹진의 연평도를 삼켰던 ‘사라호’ 태풍이 낳은 곡이다.
그해 9월11일 서태평양 북마리아나 제도 사이판 섬 해역에서 발생한 광풍은 15~18일 일본 오키나와 서해상과 동중국해를 휘돌아 북상했다. 17일 추석 당일 우리나라에 불어닥쳐 사망·실종 849명, 부상 2533명의 피해를 줬다. 1900년 이후 발생한 재해 중 3번째로 큰 인명피해였다.
이때 연평도 어장으로 조기잡이를 나갔던 어부들은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연락도 없고, 시신도 찾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어부들을 추모하고자 몇 해 뒤 추모비가 건립됐다.
이 애절한 사정을 강남풍이 가사를 짓고 김부해가 곡을 엮어서 23세 최숙자가 1964년 추모비 제막식에서 불렀다.
당시 연평도에서는 갈매기는 조기떼를, 어부들은 갈매기를, 색시들은 어부를 따랐다고 한다. 돈이 많이 풀리던 포구에 떠돌던 풍문이다. 연평도는 파시(波市)가 서던 섬이다. 파시는 고깃배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을 말한다.
연평도는 한때 500가구, 인구 3000명에 불과한 섬임에도 술집 260곳이 있었고, 물새로 불리는 400명의 색시가 어부들의 주머니 속을 들췄단다.
연평도 조기 풍어기는 4월 중순~6월 초순께까지 약 50일이다. 이때는 ‘사흘 벌어 1년 먹는다’는 말이 돌았다. 당시 연평도에선 골목길을 떠도는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녔단다.
이 곡을 부른 최숙자는 1941년 출생해 1957년 ‘개나리처녀’로 데뷔했다. 1977년 미국에 이민을 가서 2012년 1월6일 향년 71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농민일보 [그 노래 그 사연] 최숙자 ‘눈물의 연평도’…풍랑 속 사라진 어부들의 애달픈 사연
2018-09-12 유차영 <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한국콜마 상무이사>
제가 인용한 펌글이나 기타 자료들에서 "23세 최숙자가 1964년 추모비 제막식에서 불렀다." 라는 주장대로 라면 인용한 펌글의 내용 그대로 따라야겠지만, 1962~3(추정?)년 신세기축음기주식회사 제작 음반(SLB.10374/앨범 표지 사진 '황금심- 황혼의 이별가')에서보는 것처럼, 1면도 아닌 2면 '유성진- 외로운 가로등'에 이은 두번 째 곡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발표한 이 레코드에 적혀있는 작사가 이름은 본명인 김문응 작사, 김부해 작곡으로 뒷면 노래 가사지에 적어 놓았습니다.(1964년도 최숙자 독집에 있는 작사가 江南風은 김문응 선생의 필명입니다)
이 앨범에 이어 1964년에 발매된 레코드가 2종, 먼저 10인치 LP레코드(신세기 SLB-10408/崔淑子 힛트앨범 No.2)
그리고 다시 12인치 LP(신세기 SLB-10408/崔淑子 힛트앨범 No.2)로 나왔는데 이들 음반의 작사자 표기는 江南風으로
되어 있습니다.
==>1950년 말에 데뷔한 최숙자는 <눈물의 연평도>, <개나리 처녀> 등 수많은 노래를 히트시키며 196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다. 총 8곡을 수록한 이 음반은 1964년 신세기레코드에서 10인치 LP로 발매한 최숙자의 독집 음반이다.
수록곡 중 1면 첫 트랙인 타이틀곡 <눈물의 연평도>가 크게 히트했다. 강남풍이 작사하고 김부해가 작곡한 이 노래는
1959년 한반도에 큰 피해를 입힌 태풍 사라로 희생된 어부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래였다.
이 곡은 음반 발매 5년 전에 한반도를 덮친 태풍 사라의 여파가 당시 한국인에게 얼마나 오랜 기간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보여준다. 가사에 등장하는, 고기잡이를 떠나 원수 같은 태풍 사라로 인해 돌아오지 않은 어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더없이 애절하다.
<눈물의 연평도>는 재해 발생 5년 후에 발표했지만, 이 노래는 큰 공감대를 형성하며 히트했다.
신세기레코드는 처음에 10인치 LP로 음반을 발매했으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12인치 LP로 재발매했다.
총 12곡을 수록해 재발매한 12인치 LP에는 10인치 LP 수록곡인 <왕자아기 착한마루>를 삭제하고, 영화 주제가 <원앙선>,
<소문이 났네>, <가신님은 그 언제>, <조르지 마세요>, <도라지 낭랑> 5곡을 추가했다.
타이틀곡 <눈물의 연평도>에 ‘영화 주제가’라는 표기가 추가된 것을 보면 이후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 10인치와 12인치 음반은 같은 음반 번호(SBL 10408)로 제작했으나, 화제를 모아 음반이 더 팔려나가자 수록곡은 같고
음반 번호(가 12023)만 바꾼 12인치 재반 LP를 추가 발매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숙자 힛트앨범 NO.2 - 최숙자 (가요앨범 리뷰, 최규성)
위 인용사진 - 한국대중가요앨범11000
(1964, 10인치 LP 음반, 신세기 SLB-10374) 최숙자 힛트앨범 No.2
1 눈물의 연평도
2 찔레꽃 사랑
3 날 울여놓고
4 한강수 흘러
1 서울 가신 차도령
2 눈물젖은 낙동강
3 왕자아기 착한마루
4 왜 안오실까
(1964년 12인치 LP, 신세기 SLB.10408) 최숙자 힛트앨범 No.2
영화주제가 눈물의 연평도
(1964, 12인치 LP, 신세기 SLB.10408) 최숙자 힛트앨범 No.2
영화주제가 눈물의 연평도
1 눈물의 연평도
2 찔레꽃 사랑
3 원앙선
4 날 울여놓고
5 소문이 났네
6 한강수 흘러
1 서울 가신 차도령
2 가신 님은 그 언제
3 조르지 마세요
4 도라지 낭랑
5 눈물 젖은 낙동강
6 왜 안오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