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成愛 - 바람에 부치는 편지~ 納沙布岬 연속 듣기]
심영식 작사, 황문평 작곡의 1967년 TBC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가장무도회 (가수 남진)"를, 1976년 이성애가 작사가 신동운이 改辭한 "바람에 부치는 편지"를 1977년 일본에서 "納沙布岬(のさっぷみさき)"로 리메이크 하여 불렀는데 특히 사할린 韓人 同胞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가사가 가슴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사할린 同胞들을 다룬 첫번째 노래는 앞서 포스팅한 한빙 작사, 여야성 작곡, 신해성이 1966년에 불렀던 "한 많은 가라후도(토)"가 있는데 그 뒤 이성애의 "바람에 부치는 편지(納沙布岬)"가 일본 현지에서 불리워지는 바람에 일본 사회에 '아직도 송환되지 못해 사할린에 남아 있는 징용 피해자'들의 실상을 일깨워 준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이후 1985년에 이미자가 같은 曲名인 '바람에 부치는 편지'로 같은 작사가 신동운이 재차 改辭하여 불러, 사할린에 報國隊란 이름으로 끌려갔던 한 많은 이 땅의 젊은이들을 잊지 않고 다시 獨立된 우리 조국 大韓民國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성애 - 바람에 부치는 편지
신동운 작사, 황문평 작곡
바다 위에 번지는 갈매기 울음 소리는
안타까운 내 님의 목메인 사연일까
다정하게 속삭이던 내 님의 목소리
귓가에서 들리다가 사라져 가네
바람아 바다 건너 님에게 전해다오
기다리는 이 마음 기다리는 이 마음을
보이는 섬이지만 소식을 알릴 수 없네
그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지니실까
하염없이 바라보는 눈물의 사할린
돌아오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세요
바람아 바다 건너 님에게 전해다오
기다리는 이 마음 기다리는 이 마음을
(대사)
바다 위에 번지는 갈매기 울음 소리는
안타까운 내 님의 목메인 사연일까
바람아 바다 건너 님에게 전해다오
기다리는 이 마음 기다리는 이 마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눈물의 사할린
돌아오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세요
바람아 바다 건너 님에게 전해다오
기다리는 이 마음 기다리는 이 마음을

(1976 지구) 熱唱 李成愛
Side 1
1. 바람에 부치는 편지
2. 향수
3. 목포의 눈물
4.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
5. 아리랑
6. 단장의 미아리 고개
Side 2
1. 돌아와요 부산항에
2. 울고넘는 박달재
3. 물방아 도는 내력
4. 나그네 설움
5. 도라지
6. 애수의 소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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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는 197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남진의 히트곡 "가슴 아프게"를 일본어 앨범으로 발표하며 일약 인기 가수가 되었고, 4개의 싱글앨범과 5장의 LP앨범 10개의 테이프 발매로 약 6억 5000만엔의 수익을 기록하며 인기를 누렸으나, 다음해인 1978년에 충남대 차상철 교수와 결혼하면서 가요계를 은퇴했습니다.

(1977.06 TOSHIBA TP-72259)

納沙布岬( 노삿푸미사키) - 李成愛 / 바람에 부치는 편지 - 이성애
1)
かもめよ 啼くな 啼けば さみしさに
카모메요 나쿠나 나케바 사미시사니
갈매기여 울지 마오 울면 외로움에
帰えらぬ 人を また 想いだす
카에라누 히토오 마타 오모이다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또다시 떠올려요
はるかな 白夜よ 恋しい 人
하루카나 뱌쿠야요 코이시이 히토
아득한 백야여 그리운 사람
あなたの優しさ 聞こえてくる
아나타노 야사시사 키코에테쿠루
당신의 다정함이 들려오네요
風よ あなたは ご無事で いるやら
카제요 아나타와 고부지데 이루야라
바람이여 당신은 탈 없이 잘 계시는지
わたしの冬は 終わりが 来ない
와타시노 후유와 오와리가 코나이
나의 겨울은 끝이 없어요
2)
島は みえても 手紙は とどかぬ
시마와 미에테모 타요리와 토도카누
섬은 보여도 편지는 도착하지 않아요
ひとり 咲いてる 白い 浜桔梗
히토리 사이테루 시로이 하마키쿄오
홀로 피어있는 하얀 바닷가 도라지
海峡 はるかに 鳥は わたる
카이쿄오 하루카니 토리와 와타루
해협 저 멀리 새들은 날아 건너는데
わたしのあなたは いつ 帰るの
와타시노 아나타와 이츠 카에루노
나의 당신은 언제 돌아오나요
風よ お前に こころが あるなら
카제요 오마에니 코코로가 아루나라
바람이여! 그대에게 마음이 있다면
つたえておくれ わたしの願い
츠타에테오쿠레 와타시노 네가이
내 님께 전해주오 나의 이 소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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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臺詞)
바다 위에 번지는 갈매기 울음소리는
バダ ウィエ ボンジヌン ガルメギ ウルウムソリヌン
海の上に広がるカモメの鳴き声は
안타까운 내 님의 목메인 사연일까
アンタカウン ネ ニムエ モクメイン サヨンイルカ
切ない私の首のメインの話かな
바람아 바다 건너 님에게 전해다오
バラムア バダ ゴンノ ニムエゲ ゾンヘダオ
風よ海の向こう様に伝えるお
기다리는 이 마음 기다리는 이 마음을
ギダリヌン イ マウム ギダリヌン イ マウムウル
待つこの心待つこの心を
===============================
(後斂)
海峡 はるかに 鳥は わたる
카이쿄오 하루카니 토리와 와타루
해협 저 멀리 새들은 날아 건너는데
わたしのあなたは いつ 帰るの
와타시노 아나타와 이츠 카에루노
나의 당신은 언제 돌아오나요
風よ お前に こころが あるなら
카제요 오마에니 코코로가 아루나라
바람이여 그대에게 마음이 있다면
つたえておくれ わたしの願い
츠타에테오쿠레 와타시노 네가이
내 님께 전해주오 나의 이 소망을
노래 제목인 納沙布岬(노삿푸미사키)는 北海道根室市(홋카이도오 네무로시)에 있는 곶.
根室十景(네무로 주쯔케에)으로 꼽힌 景勝地의 하나입니다.
納沙布岬(のさっぷみさき)は、北海道根室市にある岬。根室十景に数えられた景勝地の一つ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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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사할린섬(러시아어: Сахали́н, 문화어: 화태)은 러시아의 섬이다. 일본에서는 가라후토(樺太からふと)라고 한다. 남북의 길이 950km, 최대 폭 160km, 면적 약 72,492km2이다. 또한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섬이자, 세계에서 23번째로 큰 섬이기도 하다. 타타르 해협과 오호츠크해 사이에 있으며, 쿠릴 열도와 함께 러시아의 사할린주를 이룬다. 사할린주의 주도는 유즈노사할린스크이다.
[나무위키]
가라후토(樺太 からふと)는 사할린 섬을 가리키는 일본어 표현으로, 역사적으로는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에 의해 통치되던 북위 50도선 이남 사할린 지역을 말한다. '가라후토'라는 지명은 아이누語인 '카무이 카르 푸트 야 모시르(Kamuy kar put ya mosir)'에서 왔으며 '樺太'는 중간의 '카르 푸트'를 한자로 훈차(訓借)한 표기로, 우리나라에서는 韓國 漢字音 그대로 '화태'라고 불렀다.
가라후토의 경우 원주민(사할린 아이누, 윌타족, 니브흐족)의 인구가 한참 못미쳤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일본인의 이주가 시작되자 이주민의 수가 본토 원주민을 크게 압도하였다. 실제로 1940년 무렵이 되면 가라후토 인구의 90% 이상이 본토에서 이주한 일본인이었고 나머지도 대부분이 조선인이었으며[15] 원주민은 미국 내 아메리카 원주민과 같이 소수 민족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이유로 가라후토는 조선과 대만에 비해 내지화하기 유리한 환경이었고 실제로 일제는 패망 2년 전인 1943년 가라후토를 본격적으로 내지로 승격했다. 다만 1945년 소련에 의해 다시 빼앗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법적으로 외지였다.
사할린에는 조선인의 이주도 활발했다. 자발적으로 이주한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1930년대와 1940년에 징용(*報國隊)으로 인해 이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강제노동이나 다름없는 노동자로 종사하였다.
일본인과 달리 사할린의 조선인은 소련의 추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은 일본인들만 본국으로 송환하고 자신들이 징용한 조선인들은 신경쓰지 않아, 조선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할린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의 귀환을 위한 소송이 일본에 대해 제기되기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한반도 분단 이후 한국은 소련과 적대하는 관계라 오랫동안 이들의 사정에 무관심했고, 북한 정부는 송환에 노력했으나 대다수의 사할린 한인들이 삼남 지방[17] 출신이라 고향인 남한이 아닌 북한으로의 송환을 꺼려 진전이 없었다......
1989년부터 한국과 소련 간 실무자 접촉 등의 가시적 진척이 있었고, 그 후 2000년에 407세대(814명)가 귀국하는 등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영구귀국을 희망하나 미처 귀국하지 못한 사할린 한인들이 많이 남아있다.
사할린은 과거 일본 영토였음에도 일본계 인구는 거의 없는 반면, 한국계 인구는 수만 명에 이르며 이들은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소수민족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2002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러시아인이 주민의 83%를 차지해서 1위인데, 2위는 바로 한인이다. 3만 명으로 주민 수의 5.5%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