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0
이 글을 쓰는 동안 또 다른 유년(幼年)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 교실 벽은 큰 판자쪽 몇 개를 덧붙여서 한쪽으로 밀어 떼어내면
두 개의 교실이 하나가 되는 구조, 이를테면 훌륭한 강당이 되는 그런 교실이었지요.
여름방학을 바로 코 앞에 둔 1964년 3학년 7월의 어느 날 하루,
우리들은 모두들 온통 신이 나서 오랜만에 교실 벽을 밀고서,
온 학교의 모든 앉은뱅이 걸상(의자)들을 가져와 열을 지어 자리를 배치하고
언제나 햇볕 들어 좋던 교실 창문을 큰 검은 천으로 가리는 일에
온 나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학교로 찾아오시던 동네 유지 분들과 우리들의 어무이, 아부지들을
부산스럽게 맞이하고 깜깜한 暗室이 된 교실로 안내하였습니다.
드디어, 챠르르~ 멋진 기계음과 함께 한 개의 큰 원형 릴에 가득 감겨져있던
보릿짚 밀짚 맥고모자 장식에서만 늘 봐왔던 영화필름이,
좁은 영사기의 작은 빛을 받고 아래쪽에 있는 또 다른 릴에 감기니
마치 마술을 부리는 듯 커다란 영상이 교실 한 벽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 이 흥분, 村 아이였던 제가 생애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느꼈던 이 설레임을
어떻게 지금 말로 다할 수가 있으리오...
그날 제 생애 처음으로 보았던 영화, “신영균, 김혜정 주연의 아까시아 꽃잎 필 때”...
멀리 만주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주인공이 우리 편인 독립군에 도리어 첩자로 몰려
마지막에 총살형을 당하는데 순국(殉國) 하기 바로 전에 부르던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닿도록~’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가락에 얹어
그가 부르던 그 노래에 강당 안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 모두가 눈물범벅이 되었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납니다.
단지 한 영화를 보았을 뿐인데 그날 이후 어느 새 “아까시아”의 이미지는
저에게는 늘 幼年의 그리움과 강렬한 배일(排日), 祖國愛가 공존하는
오직 나만이 간직한 그런 추억의 한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悲報 하나..
그날 보았던 ‘아까시아 꽃잎 필 때’의 여주인공 김혜정 여사님
(이 분의 이력履歷도 꽤 많이 알려졌었지요. 동아그룹 최 모 회장과의 관계..)이
이 글을 쓰는 어제 안타깝게도 새벽 교회에 나가는 길에 택시에 치어서 돌아가셨다고 하는군요.
제가 늘 생각하던 ‘아카시아’는 그 영화가 나왔던 그때, 마침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던
在日僑胞 歌手들 중 第1陣으로 우리 땅을 밟았던 李純愛 라는 한 女子 歌手가 가지고 들여온
'아까시아에 보슬비 나리는 밤'이라는 노래 한 곡 때문에,
한 抗日獨立軍의 悲壯한 죽음을 본 이후 그토록 미워하던 日本에 대한 주관적인 제 판단까지도
잠시 유보하게 되었는데 그 영화의 여주인공이 돌아가시던 어제,
우리 야구국가대표팀은 일본야구의 심장 도쿄돔에서 기적처럼 9회에 찾아온
단 한 차례의 기회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는 것을 보았으니 저도 이제는 이쯤에서
(단 ‘아베 首相’은 論外로 한) 한 시대의 편견에 종언(終焉)을 告할까 합니다.
그런 기분에서 이 노래 ‘아카시아에 보슬비 내리는 밤’ 한 곡조~~!!
더구나 우리와 같은 핏줄, 늘 가슴이 아픈 在日僑胞가 불렀던 노래인데...
('아카시아의 꽃비가 그칠 무렵'.., 아카시아에 보슬비 내리던 어느 날 밤에 아버지처럼
역시 노래를 좋아하시던 부산에 살고 계시던 仲父님께서 웅촌국민학교 사택 저희 집에 오셔서
아버지께 선물하신 저 양판을 기억합니다.
곱게 색동저고리를 차려 입은 아가씨 이순애가 엷은 미소로 웃고 있던 이 앨범을....)
(1964 아세아 AL-34) 재일교포 李純愛 모국방문 기념취입(10인치 독집)
1. 모국이여 안녕
2. 무정항구 십오번지
3. 선창가
4. 현해탄사랑
1. 아까시아에 비나리는 밤
2. 무역선 아가씨
3. 그대 그리워
4. 마도로스 무정해
(1969 아세아 AL-34) 편집음반/ 재일교포 이순애 힛트앨범 No.1
1. 모국이여 안녕 (李純愛)
2. 무정항구 십오번지 (李純愛)
3. 선창가 (李純愛)
4. 마도로스 무정해 (李純愛)
5. 코스모스 사랑 (박재란)
6. 추억의 호수 (李純愛)
1. 아까시아에 보슬비 내리는 밤 (李純愛)
2. 무역선 아가씨 (李純愛)
3. 그대 그리워 (李純愛)
4. 현해탄 사랑 (李純愛)
5. 남자란 위험해요 (윤미)
6. 남국의 보레로 (김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