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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 '92년 장마, 종로에서.. 2007.07.17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733호 [유성문의 길] 전문

고향모정 2023. 10. 20. 16:54

정태춘 - '92년 장마, 종로에서

작사 작곡 편곡: 정태춘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차도 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우워~~ 워~ 워우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워~ 워우워~~  워~ 워우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타워 쯤에선 뭐든 다 보일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훠이~ 훠이 훨~ 훠이~ 훠이 훨~

빨간 신호등에 멈춰서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빛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훠이~ 훠이 훨~ 훠이~ 훠이 훨~ 훠이~ 훠이 훨~

훠이~ 훠이 훨~ 훨~ 훨~ 훨~

 

[펌 자료] 2007.07.17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733호 [유성문의 길] 장마, 종로에서

 

1992년, 그리고 2007년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차도 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정태춘 ‘92년 장마, 종로에서’ 1절

 

1992년 장마는 유난히도 짧았다. 7월 9일부터 23일까지 단지 보름 만에 장마는 끝이 났다. 1993년 10월에 발표한 정태춘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몇 가지 주요한 시의를 띠고 있었다. 음반사전심의에 맞서 공개적으로 비합법적인 방법(사전심의 없이)으로 출반, 판매, 배포를 강행한 기념비적인 음반이었고, 그 결과는 1996년 위헌판정으로 사전심의제가 폐지되는 성과로 나타났다. 사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정태춘이 형식적인 사전심의를 거쳐 1990년에 발표한 ‘아, 대한민국’에 비한다면 오히려 사전심의가 필요 없을 만한 곡들이었다. 한편으로 1992년 여름은 그 해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3당 야합(‘아, 대한민국’의 1990년)’으로 민주화의 깃발이 참담히 꺾일 음울한 조짐을 보여주던 이른바 ‘환멸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5년 후 이 땅에는 미증유의 IMF환란이 찾아들었다.

‘잃어버린…’인지 ‘되찾은…’인지 모를 10년이 또 지나고 2007년 여름, 장마는 다시 시작되었다. 장마가 시작되자마자 기다리지 않아도, 깃발군중은 대학로에서 청계천으로, 종로로, 광화문으로 넘실거렸다. ‘한·미FTA 반대’를 외치는 금속노조 총파업의 대열은 그 금속성에도 불구하고 장맛비에 흠씬 젖어들었다. 그를 뒤로 하고, 청계천 분신의 현장 곁에 세워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은빛 동상은 청계천이 아니라 아스팔트 다리에 발을 묻은 채, 아니 발이 묶인 채 우두커니 비를 맞고 있었다. 잠시 잿빛 하늘을 올려다 보니, 비에 젖은 비둘기들 힘없이 공중을 날아오른다. 그들이 ‘낮은 자세’를 취할 때면, 아스팔트 위에는 으레 음식물 찌꺼기가 버려져 있기 마련이었다. 그것들로 비둘기들은 한껏 비만해졌지만, 그 비만의 내면에는 끊임없는 공복이 가득했다.

 

그 많은 ‘어르신’들이 탑골공원에서 자리를 옮긴 종묘공원은 어떠한가. 빗속에서 장기판을 벌리고, 정자의 주춧돌을 베게 삼아 한뎃잠을 자고, 하릴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지만, 그 속내에는 까닭 모를 분개가 팽배해 있었다. 어깨가 조금만 부딪혀도 사단이 벌어지고, 전도의 목소리에도 공연히 화를 돋운다. 지나치던 우산이 목덜미에 비를 흩뿌리니, 대뜸 욕설이 난무한다. 그래도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우산이 그런 것’이고, 욕을 해대는 이유도 ‘욕을 먹으면 오래 살기’ 때문이란다. 좀더 나이든 층은 더 젊은것들의 버르장머리를 탓하고, 그 반대는 ‘고려장’ 운운하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대꾸로 맞선다. 어떤가. 종묘가 그러할 때, 사직의 판국 역시 ‘검증’과 ‘통합’으로 소란스러우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부끄러운 마로니에 거리를 지나 혜화동 로터리로 접어들면, 이번에는 난데없이 필리핀 거리가 나타난다.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들이 혜화동성당을 다니면서 성당 앞에 벼룩시장 비슷한 것을 열었던 모양이다. 그 수효가 점차 늘어나더니, 이제는 100여 m에 이르는 제법 어엿한 ‘작은 필리핀’을 형성했다. 필리피노들은 타갈로그어(필리핀어) 미사시간을 전후해 판을 벌리고, 고국에서 공수해온 물건을 팔고 사고, 고향의 소식을 나눈다. 하지만 그 구간만 넘어서면, 거리는 여전히 낯선 이국땅일 뿐이다. 그대, 고향까지의 거리는 얼마쯤인가. 그대, 언제쯤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종로통으로 돌아오면, 거리엔 하나둘 휘황한 불빛들이 켜지고 빗속에서 또 다른 시간을 준비한다. 그 불빛 아래 가수 ‘비’의 사진을 타고 내려온 빗물과, 종각의 척화비를 적신 빗물과, 국세청 뒤 하나투어의 상공을 선회한 빗물과, 종묘공원 ‘박카스 아줌마’의 돗자리를 적신 빗물과, 고궁의 담장기와 위에, 청계천 전태일 동상의 등줄기로, 종3의 낡은 골목길에, 대학로 피에로의 빨간 코끝에, 젖은 붉은 깃발 끝에, 필리핀 거리의 좌판 위로, 다시 국립서울대학교유지비를 타고 내린 빗물들 모두 모여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가문 어느 집’으로나 흘러가면 좋으련만, 흐르고 흘러서 기어이 ‘한반도 대운하’의 수계로 흘러가고야 말 것인가.

 

비가 개이면 서쪽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빨간 신호등에 멈춰서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빛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정태춘 ‘92년 장마, 종로에서’ 2절

 

<글·사진|유성문<객원기자> rotack@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