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10
주간한국 65.11.28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밤하늘의 트럼펫>(1) 조르지 러뱅...죠르주 주뱅
2.= <보슬비 오는 거리>(2) 성재희
3.= <진주조개(잡이)>(3) 박재란
4.↑<울고 웃는 인생>(5) 한명숙
5.↑<열풍>(6) 남일해
6.↓<진주 조개잡이>(4) 빌리본 악단
7.= <샤레이드>(7) 이시스터즈
8.▲<정동대감>(0) 이미자
9.▲<종이배>(0) 위키리
10▲<당신의 거짓된 마음>(0) 엘비스 프레슬리--주간한국 65.11.28, 19쪽
주간한국 65.11.21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밤하늘의 트럼펫>(1) 조르지 러뱅...죠르주 주뱅
2.↑<보슬비 오는 거리>(3) 성재희
3.↑<진주조개(잡이)>(4) 박재란
4.↓<진주 조개잡이>(2) 빌리본 악단
5.= <울고 웃는 인생>(5) 한명숙
6.= <열풍>(6) 남일해
7.= <샤레이드>(7) 이시스터즈
8.= <사랑이 끝났을 때>(8) 한명숙
9.▲< 월남의 달밤>(0) 윤일로
10=<여자가 웃을 때>(10) 김상국--주간한국 65.11.21, 19쪽
주간한국 65.11.14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밤하늘의 트럼펫>(1) 조르지 러뱅...죠르주 주뱅
2.= <진주 조개잡이>(2) 빌리본 악단
3.↑<보슬비 오는 거리>(4) 성재희
4.↑<진주 조개(잡이)>(10) 박재란
5.↑<울고 웃는 인생>(6) 한명숙
6.↑<열풍>(7) 남일해
7.▲<샤레이드>(0) 이시스터즈
8.↓<사랑이 끝났을 때>(3) 한명숙
9.↓<태양이 싫은 다방족>(5) 최희준
10↓<여자가 웃을 때>(8) 김상국--주간한국 65.11.1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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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11월 마지막 넷째 주인 28일에는 새로 진입한 곡이 3곡으로 영화주제가 <정동대감(이미자)>, 잔잔한 스탠다드 팝風의 <종이배(위키리)>, 그리고 행크 윌리암즈가 불러 유명해진 컨츄리 뮤직의 정수精髓 <Your Cheatin' Heart의 엘비스 프레슬리 버전(Elvis Presley's Version)>이 나란히 8위, 9위, 10위 곡으로 순위표에 들었습니다.
그 대신 "사랑이 끝났을 때(8) 한명숙", "월남의 달밤(9) 윤일로", "여자가 웃을 때(10) 김상국"가 순위표 밖으로 밀려났는데 특히 지난 주에 처음으로 순위표에 들었던 월남의 달밤이 방송불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이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모든 순위표에 들지 못하고 퇴출되는 비운의 노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시련을 겪은 뒤 가사를 고쳐 다시 부른 월남의 달밤은 더 이상 가요 톱 10 순위표 안에 들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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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도전! 고전 읽기 ccsj77.tistory.com/575
~~~ <<前略>> 조광조.
성종 13년(1482년)에 태어나 중종 14년(1519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약을 받고 죽은 정치개혁자. 썩어빠진 정치를 바로잡으려다 실패하였던 이상주의자, 조광조 역시 유교의 사상으로 나라를 구하려 하지 않았던가.
그의 나이 33세 때 중종은 직접 과거를 치르는 시험장에 나아가 다음과 같은 알성문과 시험문제를 낸다.
"공자께서 '만약 내가 등용이 된다면 단 몇 개월이라도 가하지만 3년이면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 성인이 어찌 헛된 말을 하였으리오. 그러니 그대들은 이를 낱낱이 헤아려 말할 수 있겠는가...."
이에 조광조는 그 유명한 답안을 쓰기 시작한다.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임금과 백성 역시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임금들은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우리의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는가. 아아, 나는 작가로서 이 혼란한 시대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이처럼 나약한 펜을 들어 글을 써 질문을 던지려 함이니. 공자여, 과연 그대가 2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을 다시 살아간다 하더라도 수년 안에 우리나라의 어지러움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조광조여, 과연 그대가 5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수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의 걍세지략(經世之略)을 펼칠 수 있겠는가. ~~~ <<後略>>
2005년 여름 無二堂에서 최인호
위 인용문은 제 서가(書架)에 꽂혀있는 최인호 작가가 2005년에 탈고한 장편소설 유림(儒林)의 제1권 "왕도. 하늘에 이르는 길" 서문에서 가져온 글인데 전체 6권 중에서 맨 처음 제1권에 등장시킨 인물이 바로 "정동대감 문정공 정암 조광조"입니다.
소설에서 보면 정암 조광조는 1519년(중종 14년) 11월,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의 유배지에서 유배되어 온 지 불과 한 달 만인 12월 20일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짧은 한 달만에 벌어진 일을 시작으로 기묘사화로, 능주로 귀양을 가는 귀납적(歸納的) 전개로 이어졌는데, 1965년 이규웅 감독, 김진규 김지미 이예춘 김혜정 김승호가 출연한 정동대감은 조광조가 조정에 출사해서 사약을 받을 때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것으로, 그해 추석 특선영화로 국제극장에서 9월 10일 개봉했습니다.
특히 영화의 특성상 절대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홍경주와 남곤에 이어 훗날 '신묘삼간(辛卯三奸)'의 한 사람이기도 했던 심정의 간악한 소행을 부각시켜 관객들의 분노 게이지를 극도로 끓어 올린 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조선 중종(김승호) 때의 도학파(道學派) 정객 조광조(김진규)의 일대기. 조광조는 성균관 유생을 이끈 이상주의자로서 기묘사화의 제물로 희생된 공신이다. 폭군 연산을 무너뜨린 중종반정의 정국(靖國)공신 홍경주(이예춘)의 일당이 일등공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국정의 실권을 휘두르자, 의혈 선비인 조광조는 보다 못해 오직 애국충의로 국왕 중종에게 직소하지만 끝내 홍경주 일당의 세력쟁탈 간계에 희생되고 만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지만, 영화에서는 특히 안타까운 장면을 담고 있다.
중종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사약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는 것인데, 그 소식을 전하러 능주로 내려가는 의금부의 파발마가 능주에 도착하기 직전, 중종의 어명을 모르는 금부도사는 조광조에게 결국 사약을 내리고 조광조는 임금이 있는 북쪽 하늘을 바라다 보며 죽음을 맞이한다. 37세의 나이였다.
貞洞大監 - 李美子
辛奉承 작사 , 羅花郞 작곡
1
嶺을 넘고 江을 건너 南道千里를
헤어져 그린 그 님 찾아가는데
철없이 따라오는 어린 손이 차갑구나
자장 자장 잘자거라 아가야 잠들어라
이슬 내려 젖은 길이 멀기만 하다
2
사랑 찾아 님을 찾아 運命의 길을
千里라도 萬里라도 찾아가련다
등에 업힌 어린 子息 칭얼칭얼 우는데
자장 자장 잘자거라 아가야 잠들어라
눈물에 젖은 길이 멀기만 하다
(1965 지구 LM.120071) 나화랑 작곡 1집/ 영화주제가 정동대감
Side A /이미자
1. 정동대감(영화주제가)
https://youtu.be/eKE0Siu2JsY
2. 살구나무집 처녀
3. 진달래고개 사연
4. 이별의 설음
5. 행복이 보입니다
Side B /이미자
1. 항구 부르스
2. 심술쟁이 초립동이
3. 금단의 꽃
4. 모래알 같은 사연
5. 청석골 서방님
6. 모녀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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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정동대감> 노래의 주인공은 한양 조씨 조광조다. 그의 생애는 1482년부터 1519년까지, 38년이었다. 아쉬움이 아롱진 짧은 세월이다. 남다른 열정과 애착으로 가득한 '옳치'를 지향한 일생~.
그가 살던 집이 서울 정동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호(別號)가 정동대감이다. 그는 1519년 기묘사화로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능성현)으로 유배되었다가 한달 여 만에 중중 임금이 내린 사약(賜藥)을 받고 38세의 생을 마감한다.
그가 유배되었을 당시 아내 한산 이씨가 한양(서울) 정동에서 3세 전후의 두 아들(조정·조용)을 업고 안고, 남편 유배지를 찾아가는 서글픈 사연을 그린 노래가 <정동대감>이다. 이 노래는, 1965년 이규웅이 감독하고 김진규·김지미·이예춘 등이 열연한 영화의 주제곡이다.
그 당시 죄인으로 확정되었던 조광조의 아내 한산 이씨가, 두 아들을 업고 안고 건넌 강은, 한강·금강·영산강일 테이고, 넘어간 령은 남태령·차령 등등의 고개였을 것이다.
서울에서 화순까지의 거리는 오늘날 고속도로로 치면 400여㎞, 1516년 당시 굽이 길로 치면 500㎞가 될 터이다. 얼마나 각박했을까. 가슴팍이 싸늘해 진다.
조광조는 참봉(參奉)·선무랑(宣務郞)등 벼슬을 거치면서 공부를 계속하여, 1515년(중종 10년) 알성시(謁聖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중종의 총애를 받던 중 대사헌(大司憲) 벼슬까지 초고속 승진을 한다. 그러나 반대파 홍경주·남곤 등의 모함으로 귀양을 간다.
조광조의 유배지, 화순군 능주에 가면 그의 유적지가 있다. 화순군청에서 10여㎞ 남쪽으로 가면 된다. 그곳에 <정암조선생적려유허추모비>라는 비석이 있다. 적려(謫慮)는 귀양살이를 하던 오두막집이란 뜻, 유허비(遺墟碑)는 기릴 만 한 옛 자취라는 의미다.
그는 중종반정(1506)으로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을 도와 유교적인 개혁정치를 시행한다. 도교 사당인 소격서(昭格署) 철폐·권선징악을 위한 향약(鄕約)실시·토비(討匪)와 노비(奴婢) 하사특권을 인정받았던 훈구공신의 훈적(勳籍)삭제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봉건시대의 급진개혁이었다. 2024년의, 이에 해당되는 방발들은 무엇일까.
하지만 이러한 급진정책은 기존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중종 임금도 조광조의 열정을 부담스러워하였다. 결국 그는 혁명을 꾀한다는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고, 수많은 선비들이 처형당한다.
1519년(중종14) 11월, 남곤, 심정, 홍경주, 김전 등이 조광조, 김식 등 신진 사림(士林)의 핵심인물들을 몰아내어, 죽이거나 혹은 귀양 보낸 사건이 기묘사화다.
그때 중종은 승지들도 모르게 갑자기 홍경주·김전·남곤·심정·정광필·안당 등을 경복궁 북쪽 신무문을 통해 들어오게 하여 비밀회의를 열었다. 그래서 기묘사화를 일명 북문지화(北門之禍)라고도 부른다.
홍경주는 그 자신의 딸이 희빈(熙嬪)으로 중종을 모시고 있는 것을 이용하고, 경빈 박씨 등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후궁들에게 조광조 타도를 종용하였다.
이른바 대궐 안 나뭇잎에 꿀로 走肖爲王(주초위왕)이라는 4자를 써서 벌레가 파먹게 하고, 이것을 임금에게 보여 큰 충격을 주었다.
이때 走肖(주초)는 趙(조)의 파자(破字)에 해당하며, 은연중에 조광조가 왕위에 오른다는 참언(讒言)이었다.
이때 죽은 신하들은 김정·기준·한충·김식·김구·박세희·박훈 등은 모두 30대였다. 훗날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환생한 이들이다.
한비자(韓非子)에 중인(重人)이란 말이 있다. 령(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며, 법령을 어기면서 자신을 이롭게 하는 사람을 말한다.
봉근시대의 말인데,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 사람의 속내는 본인과 신만 아는 영역인데...
기묘사화 때 조광조는 중인(공공의 선을 과하게 주창하고 급하게 시행하려는) 취급을 받은 듯하다. 하지만 1544년 인종은 즉위한 후, 곧이어 기묘명현들의 신원을 복원하였다. 후에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 등은 동방사현(東邦四賢)이라고 불렀다.
임금을 어버이 같이 사랑하고 / 나라 걱정을 내 집 같이 하였도다 / 밝고 밝은 햇빛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으니 / 거짓 없는 내 마음을 훤하게 비춰주리라
정동대감 조광조가 남긴, 중종 임금이 내린 어명을 받고,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절명시(絶命詩)다.
[출처] 아랑가, 이미자 정동대감|작성자 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