週刊韓國 히트곡 TOP 10

눈물의 태양- 에미 잭슨 (涙の太陽 Crying in a Storm- Emy Jackson)... 주간한국 1966년 1월 23일 히트가요 톱 10, 9위 곡>

고향모정 2024. 12. 3. 19:58

주간한국 66.1.23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보슬비 오는 거리>(1) 성재희

2.= <정동대감>(2) 이미자

3.<진주조개>(5) 박재란

4. = <종이배>(4) 위키리

5.<바닷가에서>(3) 안다성

6. = <길 잃은 철새>(6) 최희준

7.<라스베거스 만세>(8) 엘비스 프레슬리

8.<이 땅에 저 별빛을>(7) 현미

9.▲<눈물의 태양>(0) 에미 잭슨

10 =<나는 난폭자>(10) 남일해--주간한국 66.1.23, 21쪽

 

주간한국 66.1.16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보슬비 오는 거리>(1) 성재희

2.= <정동대감>(2) 이미자

3.<바닷가에서>(5) 안다성

4.= <종이배>(4) 위키리

5.<진주조개>(3) 박재란

6.= <길 잃은 철새>(6) 최희준

7.<이 땅에 저 별빛을> (10) 현미

8.▲<라스베거스 만세>(0) 엘비스 프레슬리

9.<울고 웃는 인생>(8) 한명숙

10▲<나는 난폭자> (0) 남일해--주간한국 66.1.16, 21쪽

 

주간한국 66.1.9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보슬비 오는 거리>(1) 성재희

2.<정동대감>(9) 이미자

3.= <진주조개>(3) 박재란

4.<종이배>(6) 위키리

5.▲<바닷가에서>(0) 안다성

6.▲<길 잃은 철새>(0) 최희준

7.<크리스머스 캐롤>(5) 엘비스 프레슬리

8.<울고 웃는 인생>(7) 한명숙

9.<열풍>(8) 남일해

10▲<이 땅에 저 별빛을>(0) 현미--주간한국 66.1.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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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1월 넷째 주 톱 1위의 자리 "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가 꺼지지 않는 인기로 여전히 정상을 지켜 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  9위 "한명숙의 울고 웃는 인생" 한 곡이 순위권 밖으로 나가고 또 새로 한 곡이 순위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새로 순위표에 든 노래는 에미 잭슨(Emy Jackson)이 부른 <눈물의 태양('涙の太陽' なみだのたいよう Crying in a Storm)>(9)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Viva Las Vegas>처럼 비트 빠른 경쾌한 노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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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의 태양('涙の太陽' なみだのたいよう Crying in a Storm)>은 영국계 일본인으로 일본에서 성장한 에미 잭슨(Emy Jackson)이 1965년 4월 20일 일본 콜롬비아레코드에서 발매한 에미 잭슨의 데뷔곡으로 이 노래는 이후 그녀의 대표곡이 되어 많은 가수들에게 커버되었습니다.

 은희가 1971년에 부른 <안녕이라 말하지 마세요>는 에미 잭슨이 1965년에 부른 "Don't say goodbye"가 원곡입니다.  

 

 エミーは当時横浜のアメリカンスクールに在学し、ラジオ関東の番組をアシスタントを行う傍ら、湯川れい子に見出され、日本コロムビアの「CBS」レーベルからデビューした初号アーティストで知られる。

 1965年(昭和40年)当時、日本コロムビアは米国コロムビア(現:米国ソニー・ミュージックエンタテインメント)と提携していたが、洋楽部門「CBS」の売れ行きが芳しくなく、てこ入れを行うためにブルーコメッツの楽曲「青い瞳」と共に企画・制作されたといわれている。また、この当時の日本のレコード業界は依然として作詞・作曲家は専属契約制をとっており、フリーの作家は思いのほかリリースすることができず、「洋楽」扱いとして発売したという説もある。作詞は湯川が担当したが、クレジットはR.H.Rivers(「湯川」を「ホット・リバース」に直訳した「レイコ・ホット・リバース」の略)となっている。尤も、この楽曲が英語詞での発売となったのは、先述の通りこの当時のレコード会社に依然として根強く残る古い体質の影響だったといわれる。ブルーコメッツの「青い瞳」同様「せっかく洋楽レーベルから出すのに、なぜ日本語による歌詞で出すのか」というレコード会社からの疑義があり、英語詞に置き換えたという理由である。一方、作曲は中島安敏が手掛けた。

 バック演奏は架空の(この曲とエミーの次のシングル「夢みるマイ・ボーイ」だけで使われている実体のない)バンドであるスマッシュメンが担当し、コーラスはフィリピンのグループが担当した。

 発売当初のシングル盤の価格は洋楽扱いだったため、370円と割高だった(当時の邦楽は330円。1ドルが360円の時代だったので、全体的に輸入盤が割高だった)が、ラジオでのプロモーションがよかったため、70万枚を売り上げる大ヒットとなった。

 

 에미 잭슨은 당시 요코하마의 아메리칸 스쿨에 재학해, 라디오 칸토의 프로그램을 어시스턴트를 실시하는 한편, 유카와 레이코에게 발견되어 일본 콜롬비아의 「CBS」레이블로부터 데뷔한 초호(창간호) 아티스트로 알려졌다.
 1965년 당시, 일본 콜롬비아는 미국 콜롬비아(현: 미국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와 제휴하고 있었지만, 양악 부문 「CBS」의 판매가 좋지 않아, 부양을 실시하기 위해서 블루 코메츠의 악곡 「푸른 눈동자」와 함께 기획·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이 당시의 일본의 레코드 업계는 여전히 작사·작곡가는 전속 계약제를 취하고 있어 프리의 작가는 뜻밖에 발매할 수 없어, 「양악」 취급으로서 발매했다는 설도 있다. 작사는 유카와가 담당했지만, 크레디트는 R.H.Rivers(「유카와」를 「핫·리버스」로 직역한 「레이코·핫·리버스」의 약어)로 되어 있다. 적어도, 이 악곡이 영어 가사로 발매된 것은, 전술한 대로 이 당시의 레코드 회사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는 낡은 체질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블루코메츠의 「푸른 눈동자」와 같이 「모처럼 양악 레이블에서 내는데, 왜 일본어에 의한 가사로 내는가」라고 하는 레코드 회사로부터의 의심이 있어, 영어 가사로 대체했다는 이유이다. 한편, 작곡은 나카지마 야스토시가 맡았다.
 백 연주는 가공의(이 곡과 에미의 다음 싱글 「꿈꾸는 마이 보이」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실체가 없는) 밴드인 스매시멘이 담당하고, 코러스는 필리핀의 그룹이 담당했다.
 발매 당초의 싱글반의 가격은 서양음악 취급이었기 때문에, 370엔으로 비교적 비쌌다(당시의 일본음악은 330엔. 1달러가 360엔인 시대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수입반이 비교적 비쌌다) 하지만 라디오 프로모션이 좋았기 때문에 70만 장을 판매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