超埃而淑尤兮.. 세속을 초월하니 맑음이 더하네
"까치설"은 설 전날인 섣달 그믐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924년 윤극영 선생이 가사를 짓고 곡을 붙인 동요 "설날" 가사에 나오는 까치는 어릴 때부터 우리와 친숙한 새인 "까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원래는 "작은 설"이라는 뜻을 가진 "아찬설", "아치설"이라는 이름이 세월이 흘러 "까치설"로 바뀐 것이기 때문이며, 다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이 동요로 인해 조류 까치가 등장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는 무지와 오해 때문입니다.
사전에 풀이한 '까치설'의 뜻입니다.
--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까치설'이 없었다. 옛날에는 작은 설을 ‘아찬설’, ‘아치설’이라고 했다. ‘아치’는 작은〔小〕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아치설이 아치의 뜻을 상실하면서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엉뚱하게 바뀌었다. 음력으로 22일 조금을 남서다도해 지방에서는 ‘아치조금’이라 하는데, 경기만 지방에서는 ‘까치조금’이라 한다. 이렇게 아치조금이 까치조금으로 바뀌듯이 아치설이 까치설로 바뀌게 된 것이다.--
3.1 운동 이후 방정환(方定煥)이 제창한 어린이문화운동이 1923년 색동회(창립일은 1923년 5월 1일이며, 이 날은 대한민국 최초의 어린이날이기도 하다)에 의하여 펼쳐지게 되자 윤극영은 색동회의 일원이 되어 나라를 빼앗긴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꿈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동요를 부르게 하자.”고 주장하였다.
당시만 하여도 젊은이·어린이 구분 없이 창가를 부르던 것을 어린이의 생활감정과 정서에 맞는 창작동요를 지어보자고 하여 노래단체 "따리아회(다알리아회)"를 조직하였다.
여기에서 동요를 작곡하고 어린이들을 모아서 노래도 가르치게 되었다.
"반달(윤극영 작곡)"을 시작으로 하여 "설날", "고드름", "기찻길 옆", "따오기(이상 윤극영 작곡)",
"고향의 봄", "낮에 나온 반달", "개구리", "달맞이", "옥수수 하모니카", 퐁당퐁당", "햇볕은 쨍쨍(이상 홍난파)",
"오빠 생각", "가을 밤", "맴맴(이상 박태준)" 등 수많은 동요가 이때 작곡되었고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리는 동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사, 작곡자 윤극영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 작곡가로 "설날" 외에도 후세에까지 널리 애창되고 있는 동요를 수없이 작곡하였다. 그는 음악을 전공한 음악도였으나 문학적인 기량이 풍부하여 노래 가사도 직접 작사하였으며 그의 동요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어린이의 생활감각이나 시대적 상황에 의한 민족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1924년부터 1926년 사이에 작곡된 17곡의 창작동요를 엮어 1926년에 "반달"이라 동요집을 엮어내고, 같은 해에 동요레코드도 출반하였다.
-출처: 세광 동요애창곡집(1973)
"설날 - 노래 이정숙
윤극영 작사 작곡
1924년에 짓고 1926년 동요집 "반달"에 발표
1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2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 내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 하셔요
3
우리 집 뒤 뜰에다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리다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4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고요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 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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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정월 초하루를 말한다.
"설" 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역법이 발달하면서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문헌기록상(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부여(원삼국시대)"에서 영고를 지내는데 정월에 열리는 이것이 설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이후 줄곳 설이 명절로 조상께 차례를 올리고 새해를 축하하고 한해 건강과 다복을 기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줄곳 태음력을 바탕으로 한 설을 쇠다가 을미개혁(1896)으로 태양력을 따르기로 하면서 변화가 생긴다. 양력 정월 초하루를 설(신정)날로 삼게 되었는데 일제강점기 일제에 대한 반발로 일반에서는 음력 설을 쇠는 풍속이 계속되게 된다.
해방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서도 양력 1월 1일을 설날로 인정하여 신정연휴 3일의 관행이 이어지게 되었지만 세속 음력설을 세는 풍습이 이어지자 1976년부터 검토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981년 음력설 공휴일 검토가 되었으나 1차 무산되었고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되어 공휴일로 지정했고 1989년부터 "설날"로 호칭하고 연휴기간을 3일로 연장하면서 신정설과 구정설의 지위는 역전된다.
하지만 지금도 양력설(신정)을 쇠는 사람들도 많고, 음력설(구정)도 차츰 조상을 모시고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습은 쇠퇴하여 해돋이나 년말 타종식 같은 행사는 신정애 하고 구정에는 가족모임과 함께 여행 등 휴식을 위한 연휴로 사용하는 세태로 변화하고 있다.
설날(설)은 원일(元日), 원단(元旦), 원조(元朝), 원정(元正), 상원(上元), 신일(愼日), 달도(達道) 등 불이는 이름이 매우 다양하다.
원(元)과 상(上)은 으뜸, 조(朝)와 단(旦)은 아침인 처음 날, 정(正)은 정월을 뜻하기에 모두 정월 1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더불어 삼간다는 뜻의 신(愼)과 근신하고 조심한다는 뜻의 달도 등을 사용하여 평소 일손을 높고 근신하고 금기하며 신성한 자세로 한 해를 시작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설", "설날"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설이 있으나, 나이를 세는 의존명사 "살"과 동계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의존명사 "살"도 원래 형태는 "설"이었으며 설날은 세는 나이 기준 말 그대로 한 "살"을 먹는 날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익숙하지 않다는 뜻의 "설다", 한 해가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라는 뜻의 "선날", 서럽다는 뜻의 "섧다" 등 과 연관짓기도 하나 근거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 참고자료: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