週刊韓國 히트곡 TOP 10

목포의 눈물 - 이난영(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1935).. 주간한국 창간호(1964.9.27) <히트가요 톱10 중 5위곡> 한국판 빌보드 챠트가 매긴 인기가요 순위

고향모정 2023. 12. 1. 11:27

2019.04.12

 
<주간한국 톱10>  (창간호 1964.9.27, 20쪽)
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 주의 순위)
 
1. * <동백아가씨>(1) 이미자
2. * <라노비아>(2) 토니 달라라
3. + <맨발의 청춘>(4) 최희준 
4. - <눈물의 연평도>(3) 최숙자
5. + <목포의 눈물>(8) 이난영
5.++<나이도 어린데>(0) 질리오라 칭케티
6. + <라노비아>(10) 정시스터즈
7. - <이정표>(6) 남일해
8. - <떠날 때는 말없이>(7) 현미
9. * <맨발로 뛰어라>(9) 남일해 최희준
10. * <보고싶은 얼굴>(10) 현미
 
창간호의 성격상 위의 저 순위표는 창간 당시 그 일주일 간의 순위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아마 모르긴해도 그보다 몇 달, 아니 한 해 동안 죽~ 불리워져 왔던 그 시절 가장 사랑 받던 가요로서,
이 순위는 앞으로 전개될 당해 주간의 순위표와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이 순위표를 보면서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지금 소개하는 이난영(1916~1965)이 1935년에
부른 불멸의 가요인 <목포의 눈물>이 근 30년이 되는 저 때 가요 순위표에 중간 등수로 올라 있다는 것과 또  
같은 순위로 랭크되어 있는 질리오라 칭케티(==>Gigliola Cinquetti 질리올라 칭퀘티)의 <논호레타>입니다.
그래서 다음 주와 또 그 이후의 순위표를 미리 보면서 대략 유추(類推)해 보니, 실제로는 질리올라 칭퀘티의 
<나이도 어린데>가 5위곡이고 <목포의 눈물>은 등위 밖의 노래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단순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목포의 눈물> 이 어쨌던 5위곡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은,
이전까지 3~4위를 오르내리던 최숙자의 <눈물의 연평도>가 워낙 당시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고,
이런 맥락에서 1935년 발표(Okeh레코드) 이후 불멸의 가요로 자리잡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목포의 눈물> 이
아마 '後光效果'로 인한 낙수(落穗) 혜택을 보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위의 내용에 더해 , 당시 동거 중이던 가수 남인수의 죽음과 함께 납북된 작곡가 김해송의 아내로서
겪어야 했던 여자로서의 불행한 개인사와 맞물려, 渡美한 자녀들과 조카로 구성된 김시스터즈와 김브라더즈의
미국 생활 등을 다룬 가십성 화제가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지금 듣는 음원으로 소개된 LKL, 신진레코드사 발행 12인치 LP 편집음반이 때맞춰 그때 발매되어
다시 한번 더  '李蘭影'이라는 대가수를 불러냈을 수도 있겠습니다.
 

李蘭影 - 木浦의 눈물
作詞 文一石/作曲 孫牧人/編曲-李鳳龍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 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최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눈물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의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편집음반 10인치 LKL-1002)  '木浦의 눈물' [李蘭影追憶의 노래集]
이봉룡 작편곡 음악지휘 
 

1. 목포의 눈물
2. 봄마지
3. 아버지는 어데로
4. 진달래 시첩

1. 다방의 푸른 꿈
2. 불사조
3. 울어라 문풍지
4. 목포는 항구다

 

 (편집음반 12인치  新進-1002)  '木浦의 눈물' [李蘭影追憶의 노래]
 이봉룡 작편곡 음악지휘 
 

1. 목포의 눈물
2. 진달래 시첩
3. 울어라 문풍지
4. 님 전상서
5. 불사조
6. 해수욕장풍경

1. 과거몽
2. 봄마지
3. 다방의 푸른 꿈
4. 고향
5. 목포는 항구다
6. 해조곡  

 

 

목포는 전라도의 주요 항구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머물며 조선 수군의 진을 형성했던 곳이다. 목포가 항구로서 모습을 갖춘 것은 1897년의 일이고 이후 목포는 일제 강점기 조선 침탈의 주요 항구로 이용됐다. 따라서 목포는 한반도에서 나온 주요 산물인 삼백(목화, 소금, 쌀)의 주요 집산지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주요 도로와 철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2대 도시인 부산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은 한반도 수탈을 목적으로 국도1호선을 목포와 서울을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었다. 일제의 이런 수탈정책이 목포를 교통의 요충지로 만들었던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일부 경제사학자들로부터 시작한 식민지근대화론은 현재까지도 사학계의 최대 논쟁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의 기반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건설된 철도와 도로 및 각종 공장들이 해방이후 그대로 한국경제로 편입됐고 이것들로 인해 대한민국이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됐다는 점이다. 이런 논리대로 식민지 시대 조선의 근대화가 이룩됐다면 수탈의 상징인 1번국도의 건설과 함께 또 다른 수탈항이었던 군산을 중심으로 한 철도 건설은 해방이후 전라도의 비약적 발전이 동반돼야 한다. 여기에 두 번째로 건설된 2번국도가 목포와 부산을 연결한 도로라는 점에서 목포는 대한민국 최고의 교통의 요충지여야 하지만 목포의 교통은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해방이후 목포의 발전이 산업화시기 정치적 관계 속에서 야당의 상징적 인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이유로 산업화에서 배제될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식민지시대 도로 교통의 중심으로 발전을 이룩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대한민국의 발전을 얘기할 때 목포의 더딘 발전은 무리가 있다.
1934년 OK레코드사 1935년 Okeh레코드사 창립기념으로 향토가사 공모대회에서 목포 출신의 19세 청년에 의해서 만들어진 노래가 ‘목포의 눈물’이다. 문일석과 같은 나이로, 목포 출신 가수인 이난영에 의해 취입된 ‘목포의 눈물’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한을 담은 노래로 애창됐다. 그러나 노래가 유명해지면서 일제의 감시도 그만큼 빨라지게 됐다.
‘목포의 눈물’ 2절 첫 구절에 나와 있던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 밑에’와 2절 마지막의 ‘임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설움’이 문제가 됐다.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의 ‘삼백년 원한’은 임진왜란 삼백년 동안의 일본에 대한 원한을 얘기한 것이고, ‘노적봉’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속이기 위해 노적봉 위에 쌓은 노적가리를 비유한 것으로 해석된 것이다. 여기에 마지막 구절 ‘임그려 우는 마음’에서의 ‘임’은 다름 아닌 임진왜란의 최대 영웅인 이순신 장군을 그린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었다.
일본은 이를 불온 가요로 규정하고 이 노래의 작사가인 문일석을 조사했다. 당시 문일석은 경찰조사에서 ‘삼백년 원한품은’은 ‘연못의 동백나무 세 그루에 불어오는 바람’으로 ‘삼백연 원안풍’이 잘못 인쇄된 것이라고 말해 ‘목포의 눈물’이 금지곡 될 위기를 모면했다.
일제시기를 넘긴 민족의 애창곡으로 ‘목포의 눈물’이 사랑받았지만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프로야구에서 광주를 연고로 한 해태타이거스의 응원가로 목포의 눈물을 전라도 사람들이 부르자 이 노래에 ‘임그려 우는 마음’의 ‘임’이 은연중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광주구장에서 부르는 ‘목포의 눈물’을 금지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수탈의 아픔 속에서 민중의 마음을 실어 불렸던 ‘목포의 눈물’은 70~80년대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도 지역 정치인의 고난에 빗대 불리며 제목만큼이나 고난을 당해야 했던 곡이다.
 
위 기사는 인터넷신문 민플러스에서 발췌했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목포의 눈물
이난영 목포의 눈물 (1934)
최현진 담쟁이기자 2016.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