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에서 새로 쓴 글(超埃而淑尤兮)

양희은 외 (맷돌 참여 김민기,서유석,송창식,4월과 5월,신창균) - 아침 이슬 (김민기 작사 작곡/ 1972 유니버살 KLS. 47) '맷돌 밝은 노래 모음' 중에서

고향모정 2024. 7. 22. 14:50

 같은 시대, 같은 생각,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대학생 兄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등학생이던 제게는 큰 위안이 된 그런 분이었습니다.

70년대 초, 칠흑(漆黑) 같은 야만(野蠻)의 시대가 오자 형의 이름 석 字는 이내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금기어(禁忌語)가 되고 말았지만, 나보다 몇 년 더 앞서 살았던 형은 아직도 이 나이 될 때까지 미성숙(未成熟) 상태의 내가 늘 외경(畏敬)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바로 그런 義人으로, '時代의 사람'이 되어서 우리들 앞에 언제나 올곧게 살아라~ 몸소 낮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셔서 늘 든든하기만 한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어릴 적, 집으로 가는 후미진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것이 두려워 오금을 저려가며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저 멀리 보이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느라 서 있던 내 다섯 살 위의 큰 형님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는데....

그렇게 歲月이 가고, 또 한 시대의 傳說이 되었던, 한번도 만나뵌 적은 없었지만 그 후미지고 어두웠던 골목길 같던 시대를 걸어가던 두렵고 떨리는 동생의 발걸음을 지켜주셨던 든든하던 "빽"이었던 내 형님 같던 분...

 

 오늘 아침 출근길에 들었던 뜻밖의 悲報에 놀라 이처럼 황망(慌忙)하게 새롭게 글을 씁니다.

“삼가 故 김민기 님의 명복을 빕니다.

(1972 유니버살 KLS.47) '맷돌'  밝은 노래 모음

 

Side 1

1. 대학시절/ 4월과 5월
2. 딩동댕/ 4월과 5월
3. 비와 나/ 송창식
4. 딩동댕/ 송창식
5. 돌멩이/ 신창균
6. 새벽길/ 김민기
Side 2
1. 타박네/ 서유석
2. 진주낭군/ 서유석
3. 서울로 가는 길/ 양희은
4. 빈자리/ 양희은
5. 아침이슬/ 양희은 다함께

 

[나는 역사다] 민중과 광장의 노래 ‘아침이슬’ 작곡가 김민기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했다. 미술대학에서 작곡을 했다. 양희은이 부르기도 하고 직접 부르기도 했다.

<아침이슬>을 발표한 날이 1970년 8월28일. 이듬해에 첫 앨범. 그런데 언젠가부터 군사정권에 찍혔다.

원조 ‘블랙리스트’? 아니, 드러내놓고 잡아가던 시절이다. 김민기는 잔인하게 시달렸다.

끌려가고 두들겨 맞고 앞길이 막혔다. 노래는 금지곡으로 묶였다. <아침이슬>도 그렇게 사라질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가수. 도시를 떠나 한동안 농사를 지었다. 농부가 되어 초창기 한살림 운동도 함께 했다고.

그러다 세상이 바뀌었다. 1987년에 광장을 메운 백만명의 사람이 함께 부른 노래는 <아침이슬>이었다.

십여년 동안 금지된 노래였지만, 노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있었던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부르며 말이다.  

(아버지도 선생님도 사람 없는 곳에서 조용히 이 노래를 부르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그때 생각했다. 이건 이제 내 노래가 아니구나.” 현장에 있던 김민기의 회고. 그리고 <아침이슬>로만 기억되지 않기 위해, 신화로만 남지 않기 위해 달아났다. 지금도 열심히 활동.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유명한 ‘학전’의 대표가 그다.

 

김태권 만화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8486.html?_fr=mt6#csidx74ce874735c4a279c003f1f31c116f8

 

********************************************************************************************

‘대학로의 큰 별’ 김민기 학전 대표의 유언…“할 만큼 다 했다”

유지혜 기자2024. 7. 22. 16:19
 

22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김민기 전 학전 대표의 빈소. 사진제공|학전

 
노래 ‘아침이슬’로 1970~80년대 청년문화를 이끈 ‘레전드 가수’ 김민기 전 학전 대표가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민주화 항쟁 중심에 서서 민중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소극장 학전을 통해 수많은 스타들을 키워낸 김 전 대표의 별세 소식에 대중 문화계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

22일 학전 측에 따르면 김 대표는 전날 오후 8시 26분께 가족 곁에서 영면했다. 지난해 가을 뒤늦게 위암을 발견하고 최근까지 투병을 이어왔지만, 간 전이 및 폐렴으로 인해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2,3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으로 정해졌다.

사진제공|학전
 
김민기는 1970년 발표한 ‘아침이슬’로 이름을 널리 알리며 ‘포크계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그는 1969년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했고, 이듬해 고등학교 동창 김영세와 포크송 듀오 ‘도비두’로 활동하며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 해 대표곡인 ‘아침이슬’을 발표했고, 가수 양희은이 부른 노래가 민주 항쟁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권력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기도 했다. ‘상록수’, ‘꽃 피우는 아이’, ‘늙은 군인의 노래’ 등이 줄줄이 금지곡으로 지정됐지만, 고인은 좌절하지 않고 틈틈이 노래를 만들었다.

1991년부터는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과 극단 학전을 세워 공연 제작에 힘썼다. 고 김광석, 윤도현, 나윤선, 정재일 등 수많은 가수들이 학전에서 이름을 알렸다. ‘지하철 1호선’ 등 연극·뮤지컬을 통해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조승우 등 스타 배우들도 발굴했다.

사진제공|학전
 
김민기는 재정난과 건강 악화 등으로 지난 3월 1일 소극장 학전 문을 직접 닫았다. 공연장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난 17일 어린이·청소년 중심의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재개관했다. 학전은 아르코예술기록원과 함께 그의 공연과 노래, 대본을 아우르는 아카이빙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남겨질 가족과 동료들을 걱정했다. 이날 그의 생전 아지트였던 서울 종로구 카페 학림에서 긴급 브리핑을 연 김성민 총무팀장은 “선생님이 3~4개월 전부터 가족들에게 꾸준히 ‘그저 고맙다. 우리는 할 만큼 다 했다’는 말을 하셨다”고 전했다.

김민기의 조카이기도 한 김 팀장은 “생전 선생님께서 ‘신진 뮤지션이 놀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하는데’라는 혼잣말을 하신 적이 있다. 그 의견을 아르코꿈밭극장에 전달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