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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잔나(珊珊) 극중 연극 [紅樓夢] 중 여주인공 임대옥(李菁 扮)이 부른 "焚帕(수건을 불태우며)".. 靜婷

고향모정 2023. 11. 7. 16:05

2019.11.13

 아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내가 사랑한 스잔나, 리칭..  내 사춘기 소년 시절의 영원한 우상(偶像) 李菁의 불행을 그 날의 아래 기사로 보면서 그녀를 다시 떠올립니다.
1년 전 2월의 기사 속 그녀의 불행을 대하면서 저는 춘추시대 초기 제 나라 환공의 처지가 떠올라 새삼 가슴이 아팠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초기 천하를 호령하던 패자(覇者) 제(齊) 환공(桓公)이 말년에 이르러, 지금까지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악명으로 이름을 떨치는 희대의 간신 역아(易牙; 무심코 사람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환공의 말에 자기 자식을 삶아 바쳤다는 바로 그..)에 의해 싸늘한 냉궁에 갇혀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 죽었는데도 시체를 무려 67일 동안이나 거두지 않아 구더기가 냉궁 담장을 넘어 외부로 기어나갈 정도까지 되었다는 이야기가...
 

 
(時空會變 人心易變 스쿵훼이삐엔 런신이삐엔
세월과 강산은 바뀔 수 있고 사람의 마음도 쉬 변하니
一片眞心換假心 이피엔쩐신환지아신
한 조각 참마음이 거짓으로 바뀌네
早知人情比紙薄 자오즈런칭비즈보
일찍이 사람 마음이 종이보다 얇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我會留時空到如今 워훼이리유스쿵따오루진
나는 세월과 강산을 지금까지 머물게 하였을 것을
万般仁情空子枝 완반런칭쿵쯔츠
온갖 사람들의 마음은 헛된 빈 자리
只落得一彎冷月照放世坤 즈루오더이완렁웨자오팡스쿤
다만 이지러진 차가운 달빛만이 세상을 비추네)
 
 스잔나가 영화 속 연극 [紅樓夢]의 여주인공 임대옥(林黛玉) 역을 맡아 연기를 하면서 남자주인공 가보옥(賈寶玉)이 준 손수건을 화로에 태우면서 부르는 노래로 이 곡을 부른 가수도 静婷, 
곡명은 <焚帕 펀파 fénpà (수건을 불태우며)>로 "心中唯一愁歌", 가슴속 깊이 묻어둔 愁心歌입니다.
극중 임대옥 역을 맡은 아픈 스잔나가 노래를 부르기 전 시녀(자견紫鵑)로 扮한 언니와 주고받는 대화 "샨샨 니 전머양, 샨샨"(스잔나 몸이 어떻니, 스잔나.)..,
그리고 실제소설 속의 여주인공 임대옥이 이 장면 이후 숨을 거두는 것 등, 바로 이 역을 통해서 영화가 암시하는 결말을 미리 짐작하게 합니다.
 淸代에 조설근( 曹雪芹)이 쓴 [紅樓夢]은 賈、史、王、薛 4대 가문의 대가족 관계에서 일어난 얽히고 설킨 여러 이야기를 얼개로  、史、王、薛 4대 가문의 흥망성쇠를 배경으로 하고, 가보옥과 임대옥, 설보채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불행한 비극을 골자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국 고대 장회체(章回體) 장편소설로 중국 고전 4대 명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가보옥과 임대옥은 고종사촌 관계, 가보옥과 설보채는 이종사촌 관계로 요즘으로 보면 근친 결혼 관계라고 지탄 받을 일이나 그 당시는 명문가일수록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홍콩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종합유선TV채널 '天映頻道'에서 1977년 홍콩 쇼브라더스영화사가 제작한 임청하(린칭샤林靑霞), 장애가(창아이챠,장아이자張艾嘉)가 주연을 맡은 [金玉良緣紅樓夢(The Dream Of The Red Chamber)]을 보았습니다. 그중 임대옥 역을 맡은 장애가의 눈물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가보옥 역의 임청하는 이한상 감독의 이 영화 이후 도검소, 동방불패에서도 남자 역할을 맡아 중성적 이미지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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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菁(1948年11月8日——2018年2月22日),外文名称:Ching Lee,别名:李国瑛/娃娃影后,香港六七十年代著名女演员。 1948年出生的李菁,曾经在影坛红透半边天,大获六叔邵逸夫青睐,和何莉莉方逸华并称为邵氏旗下三大红人。
而当年与她齐名的方逸华,如今如大家所知,成为了“六婶”。
외문명Ching Lee, 별명이국영/인형영후(인형같은 최고 여배우)홍콩 60~70년대 유명한 여배우.
1948년에 태어난 이청은 일찍이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 큰 인기를 얻었으며하리리방일화와 함께 홍콩 영화계의 대부 소일부(邵逸夫)가 이끄는 쇼브라더스 소속 3대 여자스타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2018/02/23 22:34
1960‧70년대 홍콩 여배우 ‘스잔나’ 리칭 별세
 
영화 '스잔나'로 국내 올드팬에도 아련한 추억을 남긴 홍콩 1960~70년대 인기스타 리칭(李菁)이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3일 홍콩상업전대와 중앙통신에 따르면 리칭이 전날 오후 홍콩섬 빡콕(北角)에 있는 아파트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혼자 살아온 리칭은 집안에서 쓰러진 모습이었는데 숨이 끊어진지 수일이 지나 경찰은 조사를 거쳐 그의 신원을 확인했다.
경찰은 사실상 '고독사'한 리칭의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에 들어갔다.
리칭은 1967년 개봉한 '스잔나(珊珊)'에서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이복언니와 삼각 관계를 펼치다가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간 비운의 여대생 역할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잔나'는 우리 영화계에 '청춘영화' 붐을 낳게 했으며 리칭은 여러 편의 한국과 홍콩 합작 영화에 출연해 국내 스크린을 장식 하기도 했다.
1948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리칭은 본명이 리궈잉(李國瑛)으로 1949년 가족을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흥미를 느낀 리칭은 중학교 때 홍콩 최대 영화사 쇼 브러더즈(邵氏兄第)의 연기반(南國實驗劇團) 공개 모집에 응모했다.
리칭은 부모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2000명 가운데 40명을 뽑는 경쟁을 뚫고 연기반에 합격했다.
청순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겸비한 리칭은 정페이페이(鄭佩佩), 위팡잉(與方盈), 장칭(江靑), 친핑(秦萍) 등 연기반 동기 중에서도 일찍 두각을 나타냈다.
리칭은 연기반에 몸을 담은 동안 '양산백과 축영대(梁山伯與祝英台)'과 '옥당춘(玉堂春)'에서 단역으로 데뷔했다.
연기반 졸업 후 본격적으로 주연작을 촬영한 리칭은 '혈수인(血手印 1964년), '송궁비사(宋宮秘史 1965년)', '보련등(寶蓮燈 1965년)',  '어미인(魚美人 1965년), '스잔나', 한홍합작 '철면황제(鐵頭皇帝 1967년)', '아랑곡의 혈투(餓狼谷 1970년)', '위험한 렛슨(女校春色 1970년)', 신성일과 공연한 '리칭의 여선생(1972년)', '풍수20년(風水二十年 1983년) 등 50편의 작품을 남겼다. 
1965년 '어미인'으로 제12회 아시아 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리칭은 10년간 열애하던 남자친구 레이자오화(雷覺華)가 1979년 세상을 뜨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후 출연작을 크게 줄였다.
1983년 함께 의지하던 어머니를 병환으로 여의고서는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고 은막을 떠났다.
리칭이 만년에 은둔생활을 하면서 암 투병까지 하다가 외롭게 생을 마친데 팬들의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昔日影后李菁欠租被赶 投资失利烂赌输光身家(图)
2012年03月08日 17:37 来源:羊城晚报
 
上世纪60年代红极一时的亚洲影后、邵氏女星李菁,最近被曝富泰不再,生活拮据。据香港媒体报道,她2009年4月租住香港跑马地一个单位后,同年9月开始欠租,至今仍耍赖不肯搬走,被业主入禀法院赶其搬迁。
 现年64岁的李菁17岁出道,曾经红透半边天,跟方逸华、何莉莉是当年邵氏旗下三大红人,获老板邵逸夫力捧。她在1965年凭电影《鱼美人》获封亚洲影后,成为当年港台两地最抢手的女星,加上与富豪雷氏家族长子拍拖,被誉为圈中小富婆。1978年离开邵氏后,李菁与导演罗马合组“长天公司”制作电影,可惜翌年拍拖十年的男友突因心脏病去世,1983年一直贴身照顾她的母亲也病逝,深受打击的李菁宣布退出娱乐圈。此后,身家原本丰厚的李菁在朋友影响下开始玩股票,还经常去澳门赌博,逐渐坐吃山空,不得不卖掉了所有物业。雷家及旧老板邵逸夫曾多次伸出援手,但都因她嗜赌成性,最后不再帮忙。
 2009年4月,李菁以每月1.3万港元的价格,签两年租约入住名仕花园一个单位。但是交了5个月租后,就一直没再交租,业主唯有告上法庭。李菁虽然被判败诉,但一直赖着不肯搬迁,业主至今未能收回物业。
 
왕년의 은막의 여왕 리칭 집세도 못내, 투자실패와 도박으로 패가망신
2012년 3월 8일, 홍콩 양성만보 기사
 
1960년대 인기 절정의 아시아 영화 스타, 쑈브라더스 여배우 리칭은 최근 부태가 사라지고 생활이 빠듯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2009년 4월 홍콩 跑马地의 한 아파트를 임대했다가 같은 해 9월부터 임대료를 내지 않아 업주로부터 고발 당했으나 아직도 이사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현재 64세인 리칭은 17세에 데뷔해 방일화, 하리와 함께 당시 쑈브라더스사의 3대 여자 스타로 사장 런런쑈(소일 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녀는 1965년 영화 "어미인"으로 아시아 영화권에 이름을 알린 이후, 그해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자 스타가 되었고, 게다가 부자인 레이 씨 가문의 장남과 사귀면서 홍콩의 작은 갑부로 불렸다. 1978년 소 씨를 떠난 뒤 로마 감독과 함께 영화 '장천공사'를 만들었던 리칭은 이듬해 10년을 사귀었던 남자친구(레이자오화)가 돌연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1983년 어머니 마저 떠나보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유복했던 리칭은 친구의 영향으로 주식에 손을 댔고 마카오에 도박까지 하러 다니며 인생을 낭비했다.
레이 가문과 옛 사장 소일부가 여러 차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도박에 중독된 그녀를 결국 돕지 못했다. 2009년 4월, 리칭은 월 1만3000 홍콩달러(약 1억3000만원)에 아파트 명사가든에 2년 임대 계약을 했고, 5개월 월세를 내고 이후로는 계속 내지 않아 업주는 소송을 냈다. 리칭은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지만 이사를 하지 않아 업주는 아직도 부동산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