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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歷史觀도 있습니다..심수경의 두견새 우는 청령포(1966, 도미도 LD 203-A)

고향모정 2023. 9. 24. 21:10

 

(1966, 도미도 LD 203-A) 두견새우는 청령포(심수경), 이별은 슬프드라(손인호)

한복남 작곡집

1. 두견새 우는 청령포(심수경)
2. 심술쟁이(김용만)
3. 가신님 그리워(조미미)
4. 호남선 밤열차(손인호)
5. 연락선아 잘가오(심수경)
6. 약속시간 오분 전(이길남)

1. 이별은 슬프드라(손인호)
2. 아리랑 노총각(케리부룩)
3. 추억의 일기장(손인호)
4. 큰코 다처유(조미미)
5. 부부유정(김용만)
6. 나는 왜 울었을까(황인자)

 

이 글은 오래 전인 2005년 2월 초에, 음악사이트 가요114 의 가요좌담회방에서 벌어진

단종 임금과 사육신의 죽음에 얽힌 노래인 '두견새 우는 청령포'에 관한 글로, 

이후 제가 실질적으로 음악과 관련된 여러가지 글들을 쓰게 된 단초를 제공한 댓글들입니다.

먼저 알려드릴 것은 글이 워낙 길어서 다소 지루한 면이 있더라도

"아~! 세상에는 이런 歷史觀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라며

심심파적으로 읽어보시면 그렇게 지루하시지는 않을 줄 압니다.

아울러 '청산유화'님께서 이렇게 멋지게 편집한 이 귀한 영상을 올렸던 덕택에,

여러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는 소재가 되어 결과적으로 좋은 토론의 장이

열렸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 '청산유화'님의 쾌유를 진심으로 빌면서 안부를 묻습니다.

(2013년 끝내 故人이 되신 청산유화님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워낙 상반된 토론으로 진행된 관계로 주위 분들의 댓글은 전부 '닉'으로 드러나도록 했지만, 

저와 다른 의견을 주신 이 분의 '닉'은 드러나지 않게 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원래 영상을 올린 곳이었으나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두견새 우는 청령포 - 심수경
이만진 작사 한복남 작곡

왕관을 벗어놓고 영월땅이 웬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고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천리 바라보고 원한으로 삼년 세월
아~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굽이치는 물결은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 오백년 그 역사에 비각만 남아 있네

동강물 맑은 곳에 비춰주는 달을 보고
님 가신 뒤를 따라 꽃과 같이 사라진
아름다운 궁녀들의 그 절개가 장하구나
아~ 낙화암 절벽에는 진달래만 피고 지네
2005/02/01
임금 어린 임금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한
영월땅의 동강은 말없이 흐르고
노래소리는 오백년전으로 돌아갑니다.
영상과 함께하는 심수경님의 노래 잘 들었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더 추운 느낌이 듭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2005/02/01
청산유화  감사합니다. 임금님^^*
날씨가 춥다고는 하나 부산 날씨는 그런대로 견딜만 합니다.
임금님께서야말로 추운 날씨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05/02/01
붉은입술 같은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 뵙지 못했군요.
좋은 음악, 영상 잘 듣고, 잘 보았습니다.
일간 시간을 내어 한 번 만나뵐 수 있을런지요...
-고향의 모정
2005/02/01
lijuwon 붉은입술님, 이렇게 들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장담은 못하지만, 제가 술을 좋아하다보니
술이 있는 장소라면 붉은입술님을 만나뵐 수도 있을 듯 합니다만...
아무튼 좋은 저녁 되십시오!^^*
-청산유화-
2005/02/01
rokmc9927 원주에 근무할때 저곳 단종묘에 가 봤지요
귀한곡 잘 봤습니다.
2005/02/02
청산유화 록엠씨님, 여기 말씀이지요?^^* 2005/02/02
**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에서, 주 도로를 따라 바로 正南(정남), 영월군 영월읍과의 경계에 바로 이 남한강 '망향봉'의 빼어난 경치가 대번 나타납니다.
저는 이곳을 여러번 다녔는데, 정작 금부 도사 '왕방연'의 시조비는 보지 못햇읍니다.
안타까운 노릇이죠! 사륙신이란 롬들이 좀 자중했었더라도 저런 희생자는
나오지 안았을 터 ,,.
이제 겨우 사춘기가 지났을 소년을 왕으로 둘러싸고 6롬들이 '人의 帳幕'을
쳐놓고, 다 해 쳐 먹을려다가,,.

저는 사륙신들을 별로 좋게 보지 않읍니다.
수양대군-세조야 말로; " '석보 상절(釋譜 詳節)' - '석가모니의 족보의 상세한
절도있는 번역'을 했으며, 최 전선에서의 군복무도 필한, 문무 겸비의 유능한 왕의 자질을 구비! 사륙신들 그 누구도 세조를 따르지 못 한다고 봐야,,. 그런 사람이 왕에 오르면 자기들이 피곤하니깐 ,,.
퓨후으~! 언제나 사기꾼롬들은 판치게 마련 ,,. 잘 봤읍니다.

'LiJuWon'任! EXCELLENT! SIR!
2005/02/02
청산유화 1997년도 9월달에 영,평,정(강원도 영월,평창,정선)으로 며칠간 여행을 떠난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노래에 나오는 청령포에도 갔었고요...
외딴섬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을 단종임금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하니 눈물이 나올려고만 하고... 만고 역적 수양대군 세조놈을 생각하니 솟구치는 분노를 억누를길 없으며, 그 역적 수양놈이 크나큰 죄를 지은 탓에 그의 후손인 후세 임금들도 거의가 대부분......임금이나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라는 말도 있지만 만고역적 세조 같은 놈은 벼락을 맞아 죽어도 시원치 않을 놈인데도 왕이 될 뿐 더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도 대통령 재목이 전혀 못될뿐만 아니라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될 자들이 함부로 쉽게 되는걸로 봐서리 과연 하늘이 있기나 한건지...의문스러울 따름입니다...! 들러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2005/02/02
candylips CALM DOWN, SIR!!

우리는 바로 쓰여진 역사책으로 바로 읽고, 바로 思考하고, 바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역사는 결국, 대다수 침묵하는 民草들의 손을 들어 주고 있더군요...
(우리가 배운 역사책은 사육신의 충절,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더군요.)
2005/02/03
 
**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의 가치관이라는게, ,,. '홍 경래'란을 어떻게 평가했으며; '임 꺽정'을 어떻게 말해 놓았으며; 고려의 '정 지상', '묘청'등을 어찌해 놓았읍니까? '광해군'을 어떻게만 평가했으며; 역대 王들 가온데 처음으로 外國軍에게 항복한 '인조'를 大王으로 쓴 것 등,,. 이루 어찌 다 말하겠읍니까.
世宗조차도 大馬島를 '이 종무'장군으로 하여금 왜적을 완전 소탕 후, 영구히 주둔시키고, 계엄령,
또는 위수령을 실시, 백성들을 이주시켜서 식민을 했어야하거늘 ,,.
그래도 世宗의 유능한 점만을 기록,,. 이게 역사 기록 실태!
역사에, '만약(萬約)'이라는 假定(가정)을 必히 넣어서 음미(吟味) 평가(平價)하는 준엄한 내용을

全혀 실시치 않고 있읍니다.
역사에는 '假定'이 없다는 말로써 一言之下에,,. 그러니 무슨 敎訓(교훈)을 얻을 수 있읍니까?
더우기 가치관은 어떻게 발견하며,,.
단종이 불쌍하다는거야 누군들 모르오리까?
그 어린, 미성년자에 불과한, 세상 物情 아무것도 모를, 王을 둘러싸고 벌어졌었을,
사륙신이라는 이름의 그들을 저는 별로 다가워하지 않읍니다.
2005/02/03
  저는요; '이 순신'이가 쿠테타를 일으켜서; 그 유능하다는 창조.애국.애민.과학.자조.자립 정신을;
봉건 왕조에 개인적 충성을 하다가, 철수하는 敵에게 총맏아, 戰死할 것이 아니구요!
보다 더 크게, 넓게, 개인적으로야 역적으로 기록되는 한이 있을지라도;스스로 王이 되어서,
한 번 웅지(雄志)를 펴서, 억조창생을 위한 施政(시정)을 폈었더라면하는, 엄청난 아쉬움을 가져봅니다.
2005/02/03
  또; 대원군을 下野(하야)케 한 '최익현'이란 롬! 저는 이 者도 좋아하지 않읍니다.
'대원군'이 약 5년만 더했었더라도, 얼마나 국가의 기초가 탄탄해졌었겠읍니까?!
'최익현!' 되먹지 못한 文官롬이, 무지한 농민들을 선동,義兵으로 징집, 전쟁터로 몰고가서

數多(수다)히 왜놈 총에 맞아 죽게 만든 전쟁 범죄자! 염치가 없고, 면목이 없으니, 굶어죽었죠.
무슨 낫짝으로 밥먹고 삽니까? ,,.
누군 애국심이 없어서 행동 않하는게 아니고, 현 시점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진정한 현재로써의
최선인지를 모르기에 좀 침묵코잇는 것이고, 현재를 그냥 지키고 잇는 것임. 이런 토론을 많이해야합니다.
^^* 고맙! Sir 'CANDY LIPS'!
2005/02/03
  기왕 말 나온김에 또 한다면!
고산 윤선도 ; 漁夫 四時 詞(어부 사시 사)로 有名한 인조때 文官!
병자호란 때; 인조가, '도루묵'이라는 해산물을 명명케 끔 했었던, 경기도 광주 南漢山 山城에서,

국민들이야 분탕질 당하든 말든, 자기만 살겠다고 100일간 이런 겨울에 버티다가 먹을 것이 없어서
뱃때기 고파! 王이 軍服으로 갈아 입고서; '삼배, 구 고두(參拜, 九 叩頭)' 의 치욕적인 항복 제단을 스스로 만든 뒤에 치른 犯罪的인 외교 실패의 전쟁 초래!
그러자, 文官 '윤 선도'는 나라가 亡횄다는 핑게로, 무슨 돈이 그리도 많았던지는 몰라도!
가족들을 인솔, 제주도로 가다가, 도중에, 全南 海南郡 보길도(甫吉島)에 정착, 정자짓고, 유유히 살다가 ,,,!

우리들 흐느껴야합니다. 文官들 作態!
武官 '임 경업'이는 文官 '김 자점'이가 때려 쥑이고요,,,! 이러고도 역사에는 어떤 일언반구 평가가 없어요!!
이런 역사를 우리들 어떻게 바라다 봐야 하옵니까?
2005/02/03
  또 있죠?! 알콜 중독자, 강원도 道知事 송강 鄭澈! 관동별곡 著者인 文官! 임진왜란 나자마자 고 이듬해 뒈진 술 주정뱅이! 요즘도 그처럼 江原道 관동8경 관람 다니려면 쉽지 않을 터인데,,. 우리들 울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무슨 天體에는 '윤선도'와 '정 철'의 이름이 天體에 있는, 地名으로 사용되게 끔, 김 대중이때(?)
지정케 했다는군요.
이게 우리나라의 현 좌표입니다. 철저(徹底)한 숭문 천무 사상적 사고 방식(崇文 賤武 思想的 思考方式)!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라야만 존재할 때! 그 값어치와 존재, 준수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상,법률,제도,교육,종교,,,,!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해야!

안식일(安息日)에 쉬지 아니하고 밀밭사이에서 이삭을 주우면서 일을 한 '예수'에게,
트집쟁이 '바리새人'들이 묻기를;
"Look! Why do they do what is not lawful on the SABBATH?"
{"보시오! 어찌하여 그들이 그것을 하게 하시오, 그것은 安息日에 合法的이 아닌데!"}
2005/02/03
  예수의 답변;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and not man for the SABBATH!"
{"安息日은 사람을 爲해서 만들어졌으되, 사람이 安息日을 爲해서는 아니오!"}

결론적으로, 이런 면에서 다시 볼 때; '이순신'조차도 봉건사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

아닐까요?
과감히, 자기가 100번, 만고 역적이 되더라도, 썩은 文官 정권을 뒤집어 엎고, 유능한 자신의

실력으로, 민생고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한 쿠테타를 일으켰어야 ,,,! ^^*
正義를 위해 떨쳐 일어 섰었다고 규정한; 그 數多한 광주사태도 민주화라하거늘!
그런데 그들은 다 어디갔는지,,. 광주 입시부정을 보고도,,.

고만 할렵니다. ^^*
'LiJuWon'任! 'CANDY LIPS'任! 좋은 밤 되십시오!
이런 토의는 유익한 거죠! ^^* 여불비례.
candylips 오늘 ** 선생님의 글을 보니 문득 <莊子의 우화> 중에서 '無用의 用'을 이야기한 '도편수의 우화'가 새삼 떠올라 여기에 올립니다.

옛날 石이라는 도편수가 제(齊)나라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곡원(曲轅)이란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는 거대한 상수리 나무가 한 그루 있어 마을에서는 그 나무를 神木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 거대한 모습을 형용하면, 나무 뒤에는 수 천필의 소가 쉴수 있는 그늘이 지며, 나무통의 굵기는 백 아름이나 되고, 높이는 산을 내려다 볼 정도였습니다. 지상에서 70~80자 되는 곳에서 가지가 갈라졌지만, 그 가지 하나로 배를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큰 나뭇가지가 몇 십 개나 펼쳐져 있었습니다.

위용이 이럴진데, 이 큰 나무를 한 번이라도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러나 石은 정작 이곳을 지나면서 그 나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냥 휘적휘적 지나치고 마는게 아닙니까.
놀란 체 겨우 뒤쫓아간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나는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니게 된 뒤로 이와 같이 훌륭한 나무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거들떠 보시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 버리시니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石이 답합니다."그런 소리말라. 그건 아무 쓸모 없는 나무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짜면 곧 썩어 버리고, 가구를 만들면 곧 파괴되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흘러 버리고, 기둥을 만들면 곧 좀이 먹는다. 그러니 그 나무는 아무 쓸모도 없는 나무다. 아무 쓸모도 없으니까 그렇게 오래도록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도편수다운 안목에서, 石은 분명 제자들과는 달리 神木을 보는 눈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도편수인 石이 여행에서 돌아온 그날 밤, 큰 상수리 나무의 영혼이 꿈에 현몽하여 도편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나를 무엇에다 비교하여 쓸모 없다고 하느냐? 쓸모의 기본도 모르는 너가 어찌 나를 쓸모 있는 나무에 비교하려는 것이냐. 대체 배.귤.유자와 같은 나무는 그대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 열매가 익으면 잡아뜯기고, 잡아뜯기면 가지가 부러진다. 큰 가지는 찢기고 작은 가지는 잡아당겨 꺾이기도 한다. 이것은 나무에 열리는 열매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나무는 天命을 다하지 못하고 도중에 죽게 된다. 스스로 타격을 받도록 만든 것이다. 세상의 일이란 모두 이와 같으니라.
그러나 나는 쓸모없기를 내 스스로 오랫동안 바라온 터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만약 내가 쓸모있는 나무였다면 어찌 이토록 오래 살 수 있었겠느냐. 너도 나도 모두 하찮은 것인데, 어찌 서로 헐뜯을 수 있겠느냐. 너처럼 죽은 것과 다름없는 쓸모없는 인간이 어찌 산목(散木-스스로 쓸모없는 나무라고 일컷는 표현)의 
뜻을 알겠느냐."

莊子가 이 큰 상수리 나무에게 시킨 다음과 같은 말이야말로 곧, 莊子가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자 싶어하는 말이였을 겁니다.
, 莊子는 내편(內篇) 人間世 篇의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쓸모는 알아도, 쓸모 없는 것의 쓸모는 모른다"는,
인개지유용지용(人皆至有用之用) 이막지무용지용야(而莫至無用之用也)란 깨우침의 말을,
이 시대의 용렬(庸劣)한 爲政者들과 편벽(偏僻)한 後人들에게 이미 2500년이나 전에 미리 예견하고서, 
이렇듯 통렬한 比喩와 寓話로써 우리들을 아프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 선생님. 님의 일관된 말씀을 들으면서 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해서 잊고 있었던 "歷史에서는 과연 절대선(絶代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라고 하는 話頭"에 대한 미처 생각도 하고있지 않았던 해답도 생각해내야 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지배할 것이라는 [필연(必然)의 역사관]도 있지만 만약(萬約)이라는 [가정(假定)의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도 있구나~!" 라고 하는 "큰 깨우침"이 죽비로 내 손바닥을 때리면서 저를 깨우고 이토록 아프게 벌주고 있습니다.
일찌기 莊周가 그렇게 일렀거늘,
아~ 저 역시도 저 "쓸모 없는 것의 쓸모"를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던 저 도편수와 무어 다를게 있다고...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백가쟁명의 수많은 사상과, 그 많은 사상과 진리만큼이나 전혀 상반된 견해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선배님의 넓은 아량을 기대하겠습니다)

덧붙여:

위의 글은 제가 가입하고 있는 옛날가요동호회에 1월 26일 날 올린 글의 댓글을 다시 상재(上梓)한 것입니다. 그 곳에서 쓰는 제 아이디는 '고향의 모정'입니다.
2005/02/04
 
** 'CANDY LIPS'任! 우선 한 번만 열람했읍니다. 얼른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일단 저는요, 오늘 아침 신문을 보면 그 주 내용은; '박 통 죽이기 아닙니까? 저는 그 '박'통이 무관 출신이었으며, 쿠테타를 일으켰고, 5000년 보리ㅅ고개를 없앴으며, 아세아 제2위의 공업국가로 성장케 끔 했으며, 재래식 무기를 자급 자족하면서 전술전력을 극대화하는 등, 그 어느 누구도 우리 朝鮮{Korea,조선}이라는 국가를 이토록이나 강하게 만든 통치자가 없으며; 따라서, 文官들인 자기는 도저히 따를 수 없다는 심한 열등감과 정권을 빼앗긴 문관출신들의 증오에 찬 모략.중상들인 기획물로써의 기사 보도였었다는 느낌을 갖고있읍니다.

폐일언하고요; 하여튼! "꿩 잡는게 매!" 고로! 현재 우리들 서민들에겐, 100마디, 1000마디의 이론, 불평, 핑게, ,,, ,등을 떠나서;
그들이 그토록이나도 비판하는 박;통처럼의 1/100. 1/1000 만큼이라도 업적을 내면서도; 부패.비리.무능.부정도, '박'통 때의 1/100, 1/1000 만큼만 발생시켜야 하는 것 아닌지요?! 그러나, ,,,!

각설! 저는 우리나라요, 武官출신들이 정권을 쥐어야한다고 봅니다.
부도덕.파렴치.몰상식.비윤리.준강도적 금전 수수!
도대체 색맹 판정받고도 어떻게 경찰의 별 3개를 달 수 있었으며, 또 별 하나를 더 달고 경무총감이 되어서 15만 경찰의 총수인
치안 본부장으로 보직되게 하느냔 말입니다. 이러고도, ,,,! 저는 울울한 심경을 지울 수 없읍니다.
또; 군대의 사찰기관인 CIC{기무부대}장의 사표를 왜 전격 수리햇으며; 경찰 총수는 왜 보직 만료도 않됐는데 역시 사표를
수리했으며; 온갖 부정.부패 사건.사고들은 왜 진상 규명 후 시원한 발표는 없나요? 이거 않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5000년을 문관들에게 지배받으며 내려온 겁니다.

《옛날 가요》 동호회에는 저도 몇 번 들어가 봣엇는데, 정식 가입을 어떻게하는지 몰라서 ,,. 11114747 任께서 주도하시는
걸로 아는데,,. '고향의 모정'任! 게재하신 글! 다시 더 차분히 읽고서, 음미 후, 응신성 글을 드리겠읍니다. 우선, 총총.여불비례.
2005/02/04
candylips 역사가 무엇입니까?
무릇, 역사란 ‘야망을 가진 인간들이 연출해 낸 흥망성쇠의 기록’입니다.
지략과 용병에 뛰어난 자는 한 시대를 주름잡는 위업을 달성했고 그렇지 못한 자는 역사의 이면으로 물거품처럼 
스러져 갔습니다.
그래서, 文을 지칭하는 지략(智略)과, 武를 상징하는 용병(用兵)은 어찌 보면 양면적일 것 같으나 따지고 보면 二心同體의 同一體입니다.

** 선배님께서는 문관우대의 적폐(積弊)를 잘 지적하셨는데 적어도 여기에 대해선 저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아무려면 문약(文弱)의 폐해가 숭무(崇武)의 그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동의하는 사안이라고 저는 물론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배님이 말씀하시는 崇文賤武을 보는 시각도 저와 거의 같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겁니다.

그러나 일찍이 저는, 후세 사람들이 제멋대로 들이댄 잣대에 의해 재단(裁斷)되어 본래의 정체성이 해체된 우리의 뛰어났던 
문무겸비의 숱한 위인들을 알기 때문에 그 분이 딱히 文官이다, 武臣이다 라는 이분법적인 편가름을 오히려 경계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한 번 뒤돌아보면, 强骨武人 將軍으로만 알고 있던 많은 분들이 기실(其實), 당대에는 학문이 출중한 文臣으로 
더욱 유명하셨던, 말 그대로 '文武智勇을 겸한 올 라운드 플레이어'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몇 가지 例로, 고려 때의 강 감찬 장군과 서 희 장군은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文臣 벼슬에 있을 때 마침 거란의 침공으로 
국란을 당했는데, 누란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朝服 대신 軍服을 입었으며, 조선 조 초기의 김 종서 장군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권 율 장군, 倭의 침입 때에 일어났던 곽 재우 장군을 비롯한 의병장들의 대다수가 이전에는 이미 孔孟을 논하던 유학자들이였으니까 말입니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그 사람이 文 쪽이냐, 武 쪽이냐 하는 논쟁 자체가 저로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보아지며, 
이 것 또한 요즘 우리의 편가름 일변도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이상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읍니다만...
.................................................................................................................................................
아무튼 모쪼록 찾아 온 사랑방 좌담회에서, 이미 이 房에서 명망 있으신 ** 님의 답글을 받고 황망 중에 쓴 글이라 모자람이

많을 줄 믿사오나 넓으신 도량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삼가 請합니다. 康寧하시기를 빕니다.
-고향의 모정 드림
2005/02/04
 
고향의모정 武人 지배체제의 적폐(積弊)를 말하며

우리는 武臣들이 일으킨 정권 교체를 요즘 말로는 “쿠데타”라고 하고 굳이 그네들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革命”이라고 
하지만 통상 “政變”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정변... 단순한 뜻풀이로서만 볼 때 말 그대로 정권 교체란 말이지만 일반적인 정황으로는 정변의 뒤에는 언제나 선혈이 
낭자한 피 냄새가 납니다.
무신과 피 냄새.., 물론 이 정변을 주도한 사람들 중에는 애초에 문관 직으로 벼슬길에 나서서 종래에는 장군의 반열에 든 
사람도 있겠지만 역사의 앞 장으로 걸어 나올 때는 이미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쥔, 하나 같이 무인 신분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라를 새로 만들거나, 정권을 새로 창출하자는데 최고 통치자가 문신 출신이면 어떻고 무인 출신이면 또 어떨까마는, 
어째 무인 출신의 지배를 유독 부정하는 것이냐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事案들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첫 째, 그들이 지금 잡고 있는 칼에서 아직도 鮮血이 낭자하게 풍기는 비릿한 피 냄새 때문입니다.
칼이 상징하는 섬뜩한 분위기, 알지 못할 두려움-
마오 쩌둥 이던가요.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고대 이래로 동, 서양 할 것 없이 나라를 세울 때나 정권을 갈아 치울 때는, 그 중앙에는 어김없이 武力을 가진 그 시대 최고의 
武人이 주도했습니다.
그들은 정권을 잡을 때나, 잡고 난 후에라도 결코 '칼'을 멀리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권력의 속성상 이제껏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던 절대권력자의 자리를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에 겪는 일종의 강박관념, 즉 권력자의 트라우마를 이미 체험하였기 때문에 어렵게 차지한 그 자리를 그 누구에게도 나눠줄 수가 없는 정황상 어쩔 수 없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이미 예고된 살육 때문이지요.
어제의 혁명 동지는 혁명 성공 후에는 대개는 숙청으로, 더러는 졸렬하고 추악한 말도 안되는 죄명이 덧씌워진 체 칼에
목이 베여지는 신세가 되고, 대신 그 자리에는 그네들이 그때까지 그토록 미워하고 배격했던 소위, 忠臣이나 良臣과는 아주 거리가 먼~ '용렬하고 비루한 먹물종자’들인 文人들이 대거 중용되지요.
그러나 이렇게 새로운 권력자의 입에 달디 단 사탕을 넣어주고 아양을 떠는 곡학아세에 능한 일부 지조없는 문신들의 야욕이 
'단순우직'의 무인 최고 지배자와 환상의 한 조를 이루면서 역사의 나이테를 쌓는 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역사는 또다시 일을 벌려 그동안 숨죽이고 숨어 있던 일단의 무인 집단들에게 다시 칼을 쥐어 줍니다...

둘 째, 칼로써 興한 자, 칼로써 亡한다 라고 했습니다.
칼은 쓰면 쓸수록 잘 베여지는 관성이 있습니다.
일단, 정권을 창출한 무신들은 이미 그 자신들이 칼의 위력을 잘 알기 때문에, 이미 칼을 가지고 있거나 칼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응징하지요.
이때에는 그들이 그동안 대의명분으로 삼았던 民衆 (百姓, 民草라고도 하지만 國民이라는 말이 가장 합당하겠지요)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뻑-하면 반체제 인사로 몰아 결국에는 우라질, 오지게 못 되고 험한 꼴을 보입니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일부 우국지사를 자처하는 자들이(그들이 文이든, 武이든지 간에) 힘 센 한 武人을 등에 업고 
드디어 거사(?)에 나서 마치 K-1 같은 태그 매치가 이루어지고 여기에 또다시 영원한 必殺機인 '칼'이 또 등장하지요.

셋 째, 그들에게는 지식인으로서의 기초 소양이 문인들 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우리가 오늘 날 잘 쓰는 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쥬’라는 말이 있지요.
사회 고위층 인사나 높은 사회적 신분의 인사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쯤으로 해석되는 이 말의 절대적 
가치는,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꼭 가져야만 하는 최고의 덕목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지켜왔어야 할, 사람이 살아가는 한 영원히 간직해야할 금도(襟度)입니다.
본시 武란 것이 단순, 우직, 강건을 기본 바탕으로 한 것이라서 白面書生 책상머리의 文人들 보다 상대적으로 인격 도야의 
場이 덜 마련된 탓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붓을 들고 세 치 혀로써 모든 것을 농단하는 文을 통해서 세상과 대화하는 사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밀리는 것은 사실이므로, 기초 소양이 약간이라도 더 rough 하다면 문제는 크게 달라지리라 봅니다.

저는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사유로 말미암아 武人 지배 체제의 폐단을 거론했으나 이것도 어쩌면 주관적인 저의 私見일 뿐,

감히 "이것이 맞는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몰고가지 않았으면 하는게 지금의 제 바램입니다.
또한 이 글을 쓰는 저는 시쳇말로 '열우당원'도 아니고 더욱이 ‘노빠’도 아닌, 단기 쌍팔년 생으로 녹화사업이 아닌 일반 징집으로

76년도에 美軍에 징발되어(일반적으로 카츄사 KATUSA라고 하지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한 때 武人'이였습니다.
(재향군인회인가 뭔가 하는 조직에는 이테껏 영 인연이 닿지 않았으니 저로서는 제 신분을 ‘한 때~ 武人’으로만 표기할 수 밖에
없네요)
아무쪼록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는 제 글로 인한 어떤 억측도 말아 주시고 그냥 '아~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새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끝으로 ** 선배님의 安寧을 빌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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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잖아 봄이 옵니다.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올해에는 부디 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立春榜을 제법 그럴싸 하게 한 번

써 봤습니다.
절기상으로는 봄날인 이 아침, 제가 다시 쓴 봄 편지를 여러 분들의 가정에 부쳐 드립니다.
“建陽多慶 立春大吉”이라고.....
-candylips 붉은 입술 드림
2005/02/05
** 적어도, '박'통은 빵삼이 새끼처럼, 구태여 '文'이다, '武'다라는 구별을하면서 편가르는 짓을 하지도 않았었으며; 오히려, '文'이다, '武'다란은 말로 분쟁을 일으키면서 시일을 경과시켜가면서; 도둑질을 하는 기간으로 삼아, 국민들을 타 방향으로 관심을 전환시키는 사기짓은 하지 않았으며; 특히 금융 주권을 매각하는, 매국노 짓은 더욱 없었죠.

'정변', '쿠테타', '혁명, ,,, ,이런 것들의 용어가 무슨 의미가 있읍니까? 다 잘 살자는 건데,,.
잘 살게 만들어야 하지; 그래, 다 없애놓은 거지들을, 왜 또 '露宿者'라는 신조어로 바꾸어, '거지'들을 數多히 량산해
놓았읍닊싸? 그 사기꾼 빵삼이와 뚱중이 말입니다.
어쨋든 고 두 롬은 군대 기피자 아닙니까? 우리들 平民들에게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
그래도 '평민당, '민주당', '헌천년당', ,,, ,,. 평민이 어떻게 백평짜리 집, 5층 집에서, 에레베타에,대형 목욕탕에, 경호원 수십명에 ,,. 바로 정확하게 건달 사기꾼에 지나지 않읍니다.

또, 일반 시민이 어떻게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해외로 성병 치료하러 다닙니까?! 이게 세계화란 말이외깝쇼?
통곡합니다.
2005/02/05
  'candy Lips'任!
문민아란 롬들이 오히려 더! 경찰이 무업니까? 한마디로 《銃을 所持한 暴力輩 集團인 合法的인 깡패》 아닙니까?
경찰서 형사과에 가 보신적 있읍니까? 언투, 눈초리투, ,,,! 느껴보셨었는지요? 지금 뢰무현의 경호실장이 바로 70세도
더 넘은 꼰대입니다. 경찰의 별 4개인 경무총감 출신인! 누구가 누구를 경호해 준다는 겁니까? 그런 꼰대 나이에,,. 제가 실례인 줄 모르나, 저들의 표현대로, 너무나도, 젊은 세대, 신 세대, 운운 하는 까닭에 하는 말입니다. 다른 오해는 마시기를,,.
그래요!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나이, 그 몸에 어떤 정신과 어떤 육체적 행동을 능히 해 내는냐가 중요한 거죠!
곧; 武를 그토록 국민들에게 적대감을 심어 놓고는, 이제와서는, 오히려 그 武를 왜 그리도 가까이 곁에 두고 친밀히 대해
주는가요? 이러면서도 高句麗를 그리워한다는 말을 믿어주어야 하는 건지.
또; 文으로 일어선 자는 文이란 탈을 쓴 건달들로 망했어요. 자기들만 몰락한게 아니고 거기에 넘어갔었던 논리성 없던 국민들
모두도요. 그러나, 武로 일어선 자는 武로 망해서 고소할런지는 몰라도 국민까지 온통 거지로 만들어 놓지는 결코 않았죠.
그리고요; 文이란 자들이 武 보다는, 오히려, '소양(素養)- 평素의 교養'이 훨씬, 상상 못하리만치 부족하죠.
옛날 대조영의 발해에서는, "국방부-북한식으로는 인민 무력부" 를 "지부(智部) - 슬기로운 떼거리들의 모임" 이라는 표현을
쓴 것만 봐도 알죠.
'캔디 맆'任께서는 오히려 까꾸루 말하셨네요?! 누구한테 그런 사기 교육을 받으셨는지 그롬을 당장 가셔서 패 쥑여버리세요.

사기꾼롬들! ^^* 바보는 언제까지고나라도 속여 먹을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새로운 사상,지식을 새롭게 수용,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미 잘 못 알고있는 지식.사상을 나 자신으로부터 구축,
떨쳐내버리기가 훨씬 더 어렵다!" - 英國의 戰略 思想家 - 리델 하트{Liddel Hart} - ^^*
2005/02/05
  그리고요; 'KATUSA' 출신이시라고 하시니 말입니다만은도요! 저는 이따끔 春川 'Camp PAGE' 미제4유도탄사령부에 들어갈 때가 있는데 볼 적마다 놀라는 건!
24.5.6세 될 머나 먼, 수로만리 타국타향에서 왔을, 어여쁜 女軍들이 차량 밑으로 들어누워 포복으로 들어가서,
Monkey Wrench 잡고, 코에 검푸른 Grease 묻혀가면서, 車輛 整備하고는, 鐵製 Cabinet 多重 細胞 설합을 열어서 행정 정리하는 모습에 충격적인 감동을 받는 답니다.
우리들은 어떤가요? 돌이켜보셨는지요? 선거 표를 의식, 군복무 필한 자들에게 병역 가산점제도를, 박탈한 짓을 한 빵삼이,
뚱중이,,, 고생 엄청나게 더 해야 합니다. ,,.

★가요이야기(2004.2.13;귀국선:이 인권)-★광복군의귀환★
★가요이야기(2004.2.11;향수-남인수)-★해방후의 만주★
↑인내심으로 열람을 구태여 敢(감)! 권하옵니다.↑ 소감?

제가 메일친구해요에서 독도상절을 게재중입니다만;
장준하! 이런 롬들을 우리들이 지도자라고 ,,. 글을 쓴다고,,. 사상계 편집장이라는 자! 남들은 밥도 못 먹는데 비싼 등산화
신고, 무거운 배낭지고, 전국 산으로 다니면서 똥.오줌 합부로 싸갈기면서 ^^* 환경 오염시키면서 함부로 담뱃불 꽁초 버려서 산에 불내고,,. 지도.콤파스{Compass}하나 제대로 볼 줄 알면서 등산 다녔었던 건지 ,,.
지도도 볼 줄 모르면서 산에 올라갔다가 길을 잃고는 허둥대다가 기진, 겨우 길 찾아서 바위에 올라갔다가, 그만 다리에
힘빠져서리, 그만 미끄러져서리 뒈ㅈ,,. ^^* 여불비례.
2005/02/05
고향의모정 그동안 논쟁 즐거웠습니다.
원래 사이버 상에서의 토론이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습성이 있더라만 누군가는 먼저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어린 제가 먼저 인사 드리고 나갑니다.

** 선배님, 부디 노여움 푸시고 늘 건강하십시오.
혹시 이 글로 인하여 '봄이 오는 길 꽃이 피는 길/ 정든 님 나를 따라서/ 웃으며 돌아 오신다던 길/ 그 길로 나가봅니다...' 

라며 즐겁게 오던 봄이 행여나 놀라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나 않을까 은근 걱정도 됩니다.....
늘 안녕히-
2005/02/05
******* 결(決)코요! 노여움이라니요! 萬부당 億부당 하오신 말씀! 꾸준한 계속을 기대합니다. 소감문도 써 주시고요. ^^*
장 준하 사상걔 편집장의 추태! 위선적 진면목! 워리들 철저히 파 헤쳐야 합니다. 文을 부르짓는 자들을! 平이라는 한자를
사용한 롬들의 작태를! 꼭요. 걸 기대! 앙망! 기다리겠어요!(남 인수) ^^*
2005/02/05
     
     
     
     
청산유화 한마리 원한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끊어진 새벽 멧 부리엔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한 봄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수심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고!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雙影碧山中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曉岑殘月白 血漏春谷落化紅
天聾尙來聞哀訴 何奈愁人耳獨聽
2005/02/07
청산유화 달밝은 밤에 두견새 울음소리 더욱 구슬퍼
수심많은 이내 몸 누대 머리에 의지하노라
슬피우는 네 목소리 내 듣기 괴로우니
네 울음 그쳐야 내 수심도 그치리라
세상에 괴로움 많은 자에게 한마디 부치니
아예 춘삼월에는 자규루에 오르지 말아다오

月白夜蜀魄手秋 含愁情依樓頭
爾奏悲我聞苦 無爾聲無我愁
寄語世上苦勞人 愼幕登春三月子規
2005/02/07
고향의모정 단종애사[端宗哀史]
춘원 이광수(李光洙)가 1928년 11월부터 1929년 1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12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이 그의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쫓기어 강원 영월에서 죽은 [사실(史實)]을 충실하게 서술한 작품이다.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던 당시,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의 직시와 충군(忠君)사상을 고양하며 실재 인물을 문학적으로 재현시키려 한 것이다.
단종의 탄생과 성삼문 ·신숙주에 대한 고명, 수양대군과 권람의 밀의(密議)의 고명편(顧命篇),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죽여 등극의 기반을 마련하는 실국편(失國篇),
정인지 등이 단종의 선위를 전하여
세조가 등극하고 사육신(死六臣)이 죽음으로 충의를 바치는 충의편(忠義篇),
노산군(魯山君)이 된 단종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하는 혈루편(血淚篇)의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종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은 세조의 입장에서 본 김동인(金東仁)의 《대수양(大首陽)》과 대조를 이룬다.

대수양[大首陽]
1931년 《조광(朝光)》 64호~73호에 연재되었다. 작가는 수양대군을 정치이념이 확고한 역량 있는 통치자로 묘사한 데 반하여 이광수(李光洙)는 《단종애사》에서 어린 왕 단종을 정통왕권으로 간주하고 수양대군의 왕권 찬탈을 비판적 부정적으로 묘사하였다.
《대수양》의 중요한 대목을 보면, 수양의 아우 안평대군을 에워싼 김종서(金宗瑞)의 세력이 수양을 거부하고 제거하려한다는 정보를 수양이 알고 그 세력을 모두 제거한다.
나이 어린 단종은 이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 수양은 대권을 쥐게 되고 문화창조와 그 창달에 진력한다는 것이다.
김동인은 수양배격론을 사료로 삼았다고 하며, 그는 이 그릇된 사료를 바로잡아 대담한 [허구]적 작품을 통하여 개혁적인 사상과 일제강점기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고취하려고 했던 것 같다.
김동인은 이광수의 보수적 정통론적 사관(史觀)을 비판적으로 보았고, 그러한 견지에서 이광수의 《단종애사》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 문학적 시도로 《대수양》이 쓰여졌다고 판단된다.
<네이버 지식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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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각각 두 개의 상이한 시각이 충돌할 때, 전혀 史觀이 다른 역사를 우리는 둘 다 여과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그 분들이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대문호(大文豪)들일 때는 몽매한 일반 민중들은 더욱 그렇지요.
그렇지만 역사는 결코 [허구가 아닌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歷史는 正史를 기록할 뿐, 野史를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픽션(野史)의 한계는 所謂, '~카더라'로 대표되는 유비통신과 참언(讒言)의 '허구성'으로 해서 결코 민중들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산유화 님, 건강한 토론의 場을 마련해 주신데 대해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맨 처음 인사 드렸던 것 처럼 일간 기회가 닿는다면 한 번 만나뵙고 싶군요.

-'왕 방연' 선생의 시조와 '노산군'이 쓴 두 首의 詩,
그의 끝간데 없는 아픔에 가슴이 아리하게 저려 옵니다.....
"어찌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고!"

덧붙혀; 청산유화 님. 첫 詩의 마지막 구절의 '耳獨德'은 '耳獨聽'으로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 째 詩의 3 연 '이주비아문고'에서 '주' 字는 '아뢸 奏'字가 아니올런지요?
죄송합니다.

좋은 설날 맞이 하시길 바랍니다.
2005/02/07
jebh2345 좋은 말씀 볼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005/02/08
청산유화 참여하여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명절 맞이 하시기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고향의 모정님, 지적 잘해주셨습니다. 글자 하나는 틀렸고
또 하나는 한문으로 표기하지 않고
그대로 한글로만 되어 있군요,,,수정하였습니다.^^*
2005/02/08
******* 어쨋든! '사륙신들!' 저는 좋게 볼 수 없음인 바! 어찌하리까?
저는 그들을, '人의 帳幕'을 치고서 다 해 처먹으려다가 실패한, 일종의 사기꾼들로 봅니다. ,,. ^^*
2005/02/09
     
 
 
 
 
 
 
고향의모정 << 世祖, 首陽大君 바로 알기 >>
- [常識이 通하는 社會를 기다리며]

세종대왕의 큰 아들 文宗의 효성은 지극하기로 소문이 났었죠. 세종의 지병으로, 治世 마지막 4 년은 문종이 대리청정으로
사실상 父王의 역할을 맡아서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깊은 그의 孝心은, 세종의 승하와 더불어 병을 불러와 마침내는 12 살의 어린 세자가 보위에 오르지요. 이 분이 곧 端宗 임금인데 문종은 임종 전에 김 종서에게 단종의 후견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 당시 김 종서는 문무겸비의 신망이 두터운 분으로 모두가 존경하고 두려워 하는 국가의 大元老였었죠.

그 때 문종의 바로 밑 동생인 수양대군은 바로 아래 동생인 안평대군과 대척점에 서 있었는데, 신료(臣僚) 정치세력인 김 종서 일파와 손을 잡은 안평과 또 그 아래 또 다른 동생(소헌왕후 沈씨 소생 8 大君 중 6남) 금성대군과도 반목하고 있던,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조금 덜 떨어진 그의 사람들( 한 명회, 홍 윤성 등의 단순,무식한 시정잡배 수준의 패거리가 그의 막료였다는 끔직한 사실을 주목할 것)을 잘 요리하여 마치 김 태촌, 조 양은이 처럼 회칼잡이를 앞세우고 한 밤에 야비한 暗手를 써서 원로 대신을 도륙합니다. 핑게라고는 단지, 大君을 맞이하는 김종서 노인장의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다라나 뭐라나...

느닷없이 夜深한 밤에, 자기 집 앞 마당에서 철퇴를 맞은 원로 대신과 또 아비를 들쳐 안았던 그의 아들도 그자리에서 죽입니다.
그리고 3 일 후, 기어코 안평대군을 김 종서와 함께 역모로 몰아 강화도로 귀양을 보내고 후에 사사(死賜)케 합니다...

<< 계유정난 癸酉靖難 >>
이러한 상궤(常軌)를 벗어난 세조의 행위는 그 이후의 조선 왕조의 정상적인 성장에 엄청난 장애요인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첫 째, 세조는 영특하고 영민한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왕위를 빼앗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문종에서 단종으로, 長者 선위의 전통이 막 자리 잡아 왕권 계승을 비교적 순탄하게 할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도, 이 찬탈 사건 이후로 왕권 다툼이 사실상 격화 되었다고 봅니다.

둘 째, 세조는 명분 없는 쿠데타를 옹호하기 위해 외척과 수많은 함량 미달의 功臣(계유정난의 정난공신, 세조 원년의 좌익공신, 13년의 적개공신 등)들을 키워서 '훈구파(勳舊派)'라는 거대한 특권 조직을 양성, 이후 각종 사화(士禍)를 일으키는 '수구꼴통'의 비겁하고 야비한 무리가 되어 '사림 관학파'의 덜미를 잡고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 등등, 이후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살육을 감행하여 연산군 이후 선조의 집권 때까지 그 폐해가 실로 막심하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이후의 사건들은 이미 여러 분들이 다 아시는 바와 같고.....

설 잘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다가오는 날들은 <常識이 通하는 社會> 이기를 염원합니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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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혀; [계유정난]- '계유년(단종 1년인 1453년 10월 10일)에 꾀한 난리'

세종의 뒤를 이은 병약한 문종은, 자신의 短命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 인, 좌의정 남 지, 우의정 김 종서에게 단종의 보필을 부탁하였다. 의뢰를 받은 세 사람 중 좌의정 남 지는 곧 병으로 사직하였고 대신 그 후임인 정 분이 그 부탁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1453년 10월 10일 밤에 문종의 유탁(遺托)을 받은 三公 중 지용(智勇)을 겸비한 김 종서의 집을 불시에 습격하여 그와 그의 아들을 죽였다. 이 사건 직후에 首陽은, "김 종서가 모반하려 하였으므로 주륙(誅戮, 베어서 죽임) 하였는데, 사변이 창졸간에 일어나 상계(上啓)할 틈이 없었다"고 사후에 거짓 상주(上奏)하였다. 또한 곧 이어 단종의 명이라고 속여 중신들을 소집한 뒤,
사전에 준비한 生殺 계획에 따라 황보 인, 이조판서 조 극관, 찬성 이 양 등을 궐문(闕門)에서 죽였으며, 좌의정 정 분과 조 극관의 동생 조 수량 등을 귀양보냈다가 죽였으며, 친동생 안평대군이 "황보 인, 김 종서 등과 한 패가 되어 왕위를 빼앗으려 하였다"고 거짓 상주하여 강화도로 귀양 보냈다가 후에 死賜하였다.
이후 그는, 의정부 영사와 이조.병조 판서와 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직하였고, 정 인지를 좌의정, 한 확을 우의정으로 삼아 집현전 학자들에게 자신을 찬양하는 글을 짓게 하는 등 집권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 정난에 功이 있다 하여 37 명의 정난 공신이 생겼는데 그들은 수양대군 그 자신을 필두로, 정 인지, 한 확, 이 사철, 박 종우, 이 계전, 박 중손, 김 효성, 권 람, 홍 달손, 최 항, 한 명회 등이다.
<역시 네이버 지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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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모정님의 너그러움을 흠씬 느낍니다.
skdho(溫故知新) 2005/02/07


고향의 모정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랜동안 못 뵌 것 같은 감정은 왜 입니까?
문장에 배어나오는 모정님의 인자함, 저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생각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의견 역시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것이 동호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또한 가능하면 동호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글들만을 올리는 것 역시 그중에 포함 될 것입니다.
身言書判이라는 옛말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 뜻을 곱씹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고향의 모정님의 글은 그런 면에서 동호회 글의 귀감이라는 표현은 지나칠까요?
2005/02/09
청산유화 개개인의 역사관에 따라서 생각하는 관점이 다를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만고 역적 수양대군을 비롯하여 그 일파 간신배들을 미화시키는건 도저히...
'고향의모정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