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좋아하다 보면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 어떤 계기에 의해 가수가 되었는지 무척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60년대 극장 쇼 무대가 인기 절정일 때 저는 직접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成年의 나이가 아닌 아직 未成年 初.中學生일 때라서 실제로 쇼를 직접 관람한 적은 없었습니다만, 극장 앞에 붙여놓은 쇼 홍보 포스터나 간혹 요란(搖亂)스럽게 차려입고 쇼 홍보를 위해 샌드위치 맨이 메고 있던 광고판에서 거의 항상 보았던 연예인들의 이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방송보다는 극장 쇼 무대를 主舞臺로 삼아 활동하던 분들의 경우 藝名을 英語式으로 쓰는 상당한 수의 연예인들이 있었는데 그 분들 중에 지금 소개하는 이 분 ‘쟈니 리’라는 분도 있었지요.
1938년 태어난 본명이 ‘이영길‘인 쟈니리는 성장 배경이 일반인들보다 특별합니다.
쟈니리는 일본이 중국에 세운 괴뢰국(傀儡國)인 滿洲國 지린성(吉林省)에서 태어났고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광복 후 한국으로 귀국하여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4 후퇴 때 부모님 역할을 하던 외삼촌을 따라 남으로 오던 중 이별을 하게 되고 부산으로 피난을 왔는데 부산 광안리 피난민수용소(수영 수용소?)에 있던 중 그곳에서 부산항 항만 책임자 미국인 ’랙스 무섬‘이란 분의 양아들(養子)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의 이영길은 총명하고 才氣, 특히 노래를 잘 불러 養父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養父가 미국으로 귀국하는 1952년, 그도 養父를 따라서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당시 양아버지는 노래를 부를 때 바이브레이션이 좋고, 빠르고 강한 악센트로 노래하는 이영길에게 “미국에서 막 떠오르던 신인가수 쟈니 매티스(Johnny Mathis)와 많이 닮았다”며 ‘Johnny Lee’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African-American인 쟈니 매티스가 1935年 生이니 이 이름은 아마 '52년도 이후 미국에 있을 때 作名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친자식이 없던 양아버지가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했지만 정식 입양아가 아니었던 관계로 밀입국자 신분이 된 미국 현지생활은 녹록ㅎ지가 않고, 인종차별과 문화적인 갈등을 겪다 결국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와 1958년부터 악단 '쇼 보트' 소속으로 미8군 무대에 데뷔해 여러 극장 무대를 전전하면서 가수로서의 꿈을 키워 갑니다..
그러던 중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의 붐이 일던 1966년, 작사가 지명길이 가사를 쓴 이 노래 “放浪의 휘파람”으로 마침내 쇼 무대에만 서는 가수가 아닌, 방송을 타는 主流 歌手로 화려하게 등장하면서 餘勢를 몰아 같은 해에 독집음반의 타이틀 곡으로 발표한 서영은 작곡의 “뜨거운 안녕”으로 드디어 가수로서 인기 정점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쟈니리 - 放浪의 휫파람
作詞- 池明吉 編曲- 朴善吉
Titoli (A Fistful of Dollars)- Ennio Morricone
음원; 1966 신세기레코드 노래의 성좌 /외국가요시리즈 Vol.4
내 사랑을 찾아서 떠나온 마음
사나이의 외로움 그 누가 아나
放浪의 휘파람 메아리쳐 오면
끝없이 끝없이 나는 떠나간다네
내 故鄕을 등지고 홀로 온 마음
쓴웃음을 남기며 사랑을 찾아
떠도는 하얀 하늘에 휘파람 불며
홀로 간다네
내 사랑을 찾아서 떠나온 마음
사나이의 외로움 그 누가 아나
휘파람을 불면서 사랑을 찾아 헤매네
1966 신세기 가-12121 노래의 성좌 /외국가요시리즈 Vol.4
1. 방랑의 휘파람 / 쟈니리
2. 사랑은 기차를 타고 / 이씨스터즈
3. 흐르는 눈물 어찌하리 (A TEAR FELL) / 쟈니리
4. SPANISH EYES / 이씨스터즈
5. 평화의 나팔소리 / 이정자
6. 내 사랑 (MY LOVE) / 최수진
7.내 마음 울고 있오 (MY HEART CRIES FOR YOU) / 쟈니리
8. 태양의 파편 / 현미
9. 영원한 사랑아 (I 'll GO ON LOVING YOU) / 조영남
10. 돌아갈수 없는 고향 (I CAN'T NEVER GO HOME ANY MORE) / 이씨스터즈
11. 꿈꾸는 샹송인형 / 최수진
12. 고독한 사나이 (경음악)
한국에서는 1965년에 처음 상영 되었고, 1966년 서울 명보 극장에서만 35만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하여 한국의 극장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출처]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작성자 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