週刊韓國 히트곡 TOP 10

쌍고동 우는 항구 - 은방울시스터즈(은방울자매), 불로초(김영일) 작사 송운선 작곡..주간한국 1965년 4월 18일 <히트가요 톱10 중 5위 곡>

고향모정 2024. 4. 2. 05:05

2021.10.21

<주간한국 톱10>1965.4.18..(日)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 <다이너마이트>(1) 클리프 리처드

2.<사랑의 향수 제9번>(5) 더 서처스

3.<행복의 샘터>(6) 이양일, 박재란

4. ▲<레먼트리>(0) 트리니 로페즈

5. ▲<쌍고동 우는 항구>(0) 은방울시스터즈

6. ▲<영광의 부루스>(0) 남일해

7. ▲<황야를 걸어라>(0) 블룩 벤튼

8. ▲<라노비아>(0) 클라우디오 빌라

9. ▲<등대지기>(0) 오기택

10. ▲<울어라 열풍>(0) 이미자--주간한국 65.4.18, 20쪽

 

<주간한국 톱10>1965.4.11..(日)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다이너마이트>(8) 클리프 리처드

2.<천천히>(1) 안 마그레트

3.<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2) 폴 앵커

4. = <아멘>(4) 임프레션스

5.<사랑의 향수 제9번>(3) 더 서처스

6.  = <행복의 샘터>(6) 이양일, 박재란

7.<동백아가씨>(0) 이미자

8.<명동 44번지>(9) 남일해

9.<영등포의 밤>(10) 오기택

10.▲<진고개 신사>(0) 최희준--주간한국 65.4.1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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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4월 4일 톱 10 순위 안에 있던 노래는 그 중 단 3곡만 남고 보름이 지나는 동안 나머지 7곡이 모두 새로운 노래로 바뀌었습니다. 

순위권 밖으로 밀려낸 7곡은, 그동안 인기를 끌던 앤 마그레트 <슬로우리>, 폴 앵커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임프레션스 <아멘>, 클리프 리차드 <사랑을 배우자>, 박재란 <산너머 남촌에는>, 남일해 <명동 44번지>, 오기택 <영등포의 밤>입니다.

또한 4월 11일 톱 10 중 단 한 주간 머물렀던 2곡, 이미자 <동백아가씨>, 최희준 <진고개 신사>도 등외로 밀려났습니다. 지난 주 10위로 순위에 든 '진고개 신사'가 불과 한 주만에 바로 순위 밖으로 밀려난 것이 약간 의외이기도 합니다만 제가 히트가요 순위표 상에서 가장 의외라고 여겨지는 노래는 바로 지금 포스팅하는 이 노래, "은방울 시스터즈('은방울 자매'를 은방울 Sisters라는 말로 매체에 기록된 사례를 저는 이 기사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가 부른 5위에 랭크된 <쌍고동 우는 항구>입니다.

'쌍고동 우는 항구'를 제대로 설명하자면 시계를 다시 그 당시로 돌려 왜 이 곡이 출반된지 2년이 지난 뒤가 되어서야 히트가요 챠트에 들게 되었는지 그 상황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단서가 있어야 할텐데 저처럼 그 내용을 잘알 길이 없는  사람들은 많이 답답해 할 것입니다.

(==>제 추측이 맞다면 이 의문은 의외로 간단하게 풀 수 있습니다. 우선 63년에 은방울 자매란 이름으로 이 노래를 부를 때는 필시 크라운레코드사에서 10인치 음반으로 발매했을텐데 이 노래가 조금씩 사람들 입에서 불러워지기 시작하자 65년에 12인치 음반(아래 사진)에 다시 실어 대량발매를 한 이후, 당시 같이 인기를 끌었던 '삼천포 아가씨'  '무정한 그 사람'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 입은 이 노래까지 재소환되어 인기를 얻었으리라고 봅니다.) 

특히 히트가요 순위를 매기는 주간한국의 창간일이 64년 9월 27일이라 그때 들불처럼 불붙기 시작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의 독주만 눈에 띄는데, 제가 짐작하기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64년 9월 이전의 히트가요 챠트는 분명히 1위 곡에 '삼천포 아가씨'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무정한 그 사람'의 독주가 오랜 기간 지속돼 왔다고 확신합니다.   

회원님들이 제가 이렇게 쓴 위 내용을 자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은방울 자매"의 결성과 그녀들이 부른 히트곡의 탄생 배경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알아야 하겠기에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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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의 르네상스 期라고 할 수 있는 1960년대에는 솔로 가수 못지않게 다수의 듀엣 가수들이 활약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주로 여자들로 구성된 듀엣이 많았는데 그 대부분은 번안곡이나 웨스턴풍의 노래를 부르는 팀들이었고 우리나라 전통가요를 기반으로 하는 팀으로 큰 인기를 모은 듀엣으로서는 은방울 자매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 은방울 자매의 구성원은 1937년, 38년 생인 한 살 터울의 밀양 출신 박애경, 김향미 여사였었는데 이 두 분은 요즘처럼 처음부터 팀으로 만들어지는 프로젝트팀이 아닌, 각자 솔로로서도 어느 정도 대중적 지명도가 있던 시기에 서로 의기투합해 결성한 팀으로 기본적으로 탄탄한 내공을 갖춘 팀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솔로로 활동하면서 박애경 30여 곡, 김향미 20여 곡의 레코드 취입을 남겼습니다)

==><대중음악저술가 김형찬 씨의 말입니다.> 여타의 시스터즈가 기본적으로 화음을 구사한 반면 은방울자매는 유니즌(선율을 같이 노래함)을 택했고 레퍼토리는 팝송의 번안이나 스탠다드팝이 아닌 트로트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런 차별적인 전략은 은방울자매의 음악을 보다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줬다. 유니즌의 노래는 마치 한 사람이 부르는 듯하면서도 더욱 깊이가 있었고 한복을 입고 트로트를 부르는 모습들은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감을 주었던 것이다.

 

1956년, 부산여상 3학년 재학 중에 국제신문사가 주최한 콩쿠르에 출전해 당시 부산 데레사여고 3학년으로 같이 출전한 차은희 여사님에 이어 2등으로 입상한 박애경 여사님(큰 방울)은 그날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있었던 진주 출신의 작곡가 이재호 선생님에게 발탁되어 그해 무적인(霧笛人- 이재호 筆名) 작사, 이재호 작곡의 <한 많은 아리랑>으로 가요계 데뷔를 하게 됩니다.

이후 솔로 가수로서 곧 유명세를 탔는데 그 계기가 된 노래가 1957년에 제작한 영화 “가거라 슬픔이여”의 부주제가로 ‘방운아’ 선생과 듀엣으로 부른 <재수와 분이의 노래>로 이 노래의 히트로 박애경 여사는 일찍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1959년, 진영 한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으로 온 김향미 여사(작은 방울)는 작곡가 백영호 선생님이 발탁, 부산 서구 남부민동 소재 미도파레코드사에서 <기타의 슬픔>으로 데뷔한 뒤 부산 KBS전속가수로 활동하였습니다. 

나이는 한 살 차이지만 솔로 가수로서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고 있던 박애경 여사와는 같은 밀양 출신, 같은 미도파레코드사 전속으로 자매처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1961년 여름,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 해변을 같이 산책하던 중 떠오른 생각으로 일본의 쌍둥이 가수 고마도리(고마도리 자매 こまどり姉妹, 1959년 데뷔)와 같은 듀엣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던 게 다음 해인 62년 연말 은방울 자매란 이름으로 서울 시민회관에 서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2년도는 당시 부산KBS 전속가수이던 김향미가 부산KBS 방송국 대표로 서울KBS 연말 신인가수 선발대회 쿵쿠르에 출전해 영예의 1등상을 수상하여 전국적인 지명도를 획득하게 된 해로, 이 수상 이후 서울 시민회관 무대 총감독으로 있던 배영달 감독의 주선으로 비로소 '은방울 자매'를 결성, 63년 부산 출신의 작곡가 송운선 선생님을 소개 받고서 <쌍고동 우는 항구>를 크라운레코드에서 출반하였습니다.

결국 은방울 자매란 이름으로 부른 첫 히트송인 이 노래 이후, 1964년에 취입한 반야월 작사, 송운선 작곡의 <삼천포 아가씨>, <무정한 그 사람>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 특히 '삼천포 아가씨'는 하반기에 나온 '동백 아가씨' 못지 않은 음반 판매고를 올린 노래로 지금도 삼천포를 떠올릴 때 널리 불리고 있는 노래입니다.

 

은방울 자매는 이후 1968년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한 <마포종점>으로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듀엣으로 큰 족적을 남겼으나 70년대 들어 전통가요의 인기가 좀차 식어가자 조금씩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져 가다가, 1981년 원년 멤버이던 작은 방울 김향미 여사가 미국 L.A로 이민을 가면서 '여인우정'을 부른 원로가수 신해성 선생의 부인 오숙남 여사가 합류, 박애경 여사와 같이 활동을 이어오다가 2005년 11월, 애석하게도 박애경 여사님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은방울 자매는 해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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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고동 우는 항구 - 은방울 시스터(은방울 자매)

불로초(김영일) 작사, 송운선 작곡

 

1

쌍고동 울어 대면 갈매기도 울었다네

마도로스 사랑이란 이별도 많더란다

파이프 입에 물고 잘 있거라 손짓하던 

정든 님도 울었다네 갈매기도 울었다네

 

2

뱃머리에 뿌려놓은 눈물자국 얼룩졌네

마도로스 뜬 사랑에 눈물도 많더란다

찾아올 그날까지 잘 있거라 손짓하던

정든 님도 울었다네 쌍고동도 울었다네

(1965 크라운 CLS196511) 쌍고동 우는 항구, 녹 쓸은 기타줄

편곡지휘 송운선

 

Side 1
1. 쌍고동 우는 항구 /은방울자매
2. 언니 울지마러요 /은방울자매
3. 은실비 추억 /이양일
4. 그리움 /성동구
5. 항구의 눈물 /은방울자매
6. 밤 /은방울자매

 

Side 2
1. 아가씨는 코리안 타임 /이양일
2. 녹 쓸은 키타줄 /이양일
3. 명동의 밤아가씨 /은방울자매
4. 거리의 소녀 /은방울자매
5. 바로 그날 밤 /이양일
6. 타브 /이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