週刊韓國 히트곡 TOP 10

등대지기 - 오기택(강남풍 작사, 김광 작곡/ (1965 신세기 SLB.10431) ..주간한국 1965년 4월 18일 <히트가요 톱10 중 9위 곡>

고향모정 2024. 4. 7. 08:41

2021.10.23

<주간한국 톱10>1965.4.18..(日)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 <다이너마이트>(1) 클리프 리처드

2.<사랑의 향수 제9번>(5) 더 서처스

3.<행복의 샘터>(6) 이양일, 박재란

4. ▲<레먼트리>(0) 트리니 로페즈

5. ▲<쌍고동 우는 항구>(0) 은방울시스터즈

6. ▲<영광의 부루스>(0) 남일해

7. ▲<황야를 걸어라>(0) 블룩 벤튼

8. ▲<라노비아>(0) 클라우디오 빌라

9. ▲<등대지기>(0) 오기택

10. ▲<울어라 열풍>(0) 이미자--주간한국 65.4.18, 20쪽

 

<주간한국 톱10>1965.4.11..(日)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주의 순위)

1.▲<다이너마이트>(8) 클리프 리처드

2.<천천히>(1) 안 마그레트

3.<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2) 폴 앵커

4. = <아멘>(4) 임프레션스

5.<사랑의 향수 제9번>(3) 더 서처스

6.  = <행복의 샘터>(6) 이양일, 박재란

7.<동백아가씨>(0) 이미자

8.<명동 44번지>(9) 남일해

9.<영등포의 밤>(10) 오기택

10.▲<진고개 신사>(0) 최희준--주간한국 65.4.1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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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했던 가수 오기택 님의 노래입니다.

저는 '고향무정'을 특히 즐겨 불렀는데 제 닉네임인 '고향모정'과 묘한 매치 업이 되어 그 이의 노래는 지금도 내게 깊은 울림으로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가수 박우철이 오기택 님의 조카라고 하니 역시 노래 잘하는 집안은 타고난 내력이 있는 듯합니다.

 

등대직이(당시 레코드 자켓 표기) - 오기택

작사 강남풍, 작곡 김광

 

1

물새들이 울부짖는 고독한 섬 안에서

갈매기를 벗을 삼는 외로운 내 신세여라

찾아오는 사람 없고 보고싶은 님도 없는데

깜박이는 등대불만이 내 마음을 울려줄 때면

등대지기 이십 년이 한없이 서글퍼라

 

2

파도만이 넘나드는 고독한 섬 안에서

등대만을 벗을 삼고 내 마음 달래어 보네

이별하던 부모형제 그리워서 그리워져서

고향하늘 바라다 보며 지난 시절 더듬어 보니

등대지기 이십 년이 한없이 서글퍼라

 

* '등대지기'를 '등대직이'라고 표기한 재킷의 글이 좀 생뚱맞습니다만 그 당시의 우리 말 표기 방식이 지금 쓰고 있는 통일안이 정리되기 전이라고 보면 이런 혼란은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작사가 강남풍(江南風)이라는 이름은 앞서 포스팅한 적이 있는 최숙자의 대표적인 히트곡 <눈물의연평도>의 재발매레코드에 올라 있지만 그 전에 발표한 오리지널 음반에는 본명인 김문응(金文應)으로 되어 있습니다.==>https://gohyangmojung.tistory.com/123

 

눈물의 연평도 - 최숙자(김문응-강남풍 작사 김부해 작곡)..주간한국 창간호(1964.9.27) <히트가요

2019.04.10 (창간호 1964.9.27, 20쪽) * 톱10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 주의 순위) 1. * (1) 이미자 2. * (2) 토니 달라라 3. + (4) 최희준 라 4. - (3) 최숙자 5. + (8) 이난영 5.++(0) 질리오라 칭케티 6. + (10) 정시스터

gohyangmojung.tistory.com

(1965, 신세기 SLB-10431) 등대직이

 

1. 등대직이 (오기택)

2. 애상 (윤보라)

3. 부산항 나그네 (오기택)

4. 서귀포 처녀 (최숙자)

5. 구름 따라 꽃잎 따라 (김혜련)

6. 멋쟁이 고교생 (송기영)

 

1. 내 마음의 봉선화 (임혜정)

2. 밤 항구 (오기택)

3. 첫 남편 (최숙자)

4. 독도의 갈매기 (김용만)

5. 무언가 (이길자)

6. 댕기처녀 (최숙자)

 

[펌; 위키백과]

오기택은 1939년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북일초등학교와 해남중학교를 졸업하였고, 3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중학교 때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고향에 계속 살기 어려워지자 서울에 살던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상경하여 성동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였다.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에서 고복수가 운영하던 동화예술학원에서 노래를 배우던 중 1961년 제1회 KBS 직장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계기가 되어 가수로 데뷔하였다.

1962년 12월에 발표된 그의 데뷔곡이었던 《영등포의 밤》은 당대 대한민국 사람들의 척박했던 생활상과 가사가 잘 어우러졌다는 평을 들었고, 1966년 남궁원과 엄앵란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지며 이 영화에 오기택도 함께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데뷔 직후인 1963년 4월 해병대에 홍보단 사병으로 입대한 오기택은 1965년 전역한 후 1966년 한 해동안 《아빠의 청춘》, 《고향무정》, 《충청도 아줌마》, 《마도로스 박》 등의 곡들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빠른 시간에 국민가수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1967년에는 부산문화방송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대 들어서는 일본에서 원정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1975년에는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직으로 선임된 데 이어, 1980년 1월 19일에는 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제19회 정기총회에서 가수분과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위 본문에 이어 추가로 다시 올리는 글입니다]

제가 포스팅한 2021년 10월 23일 이후 글을 다시 올리는 지금, 안타깝게도 오기택 님의 부음을 접했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돌아가신 故人의 명복을빕니다.


1997년에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져 대중들에게 많은 충격을 준 바가 있다. 그 후 2010년 이후에는 건강이 몹시 악화되어서 서대문구 소재의 요양병원에서 선후배 가수와 해남군향우회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2022년 3월 23일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여담으로 전 재산을 고향의 해남고등학교에 기부하겠노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