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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영상을 보며 국민체조 따라 하기.. 국민체조 시작~! 하나 둘 셋 네이~

고향모정 2025. 3. 18. 05:04

 블로그를 잘 몰랐던 시절에 만든 제 개인블로그의 흔적이
아직도 유령처럼 인터넷 검색창에 뜨고 있군요...

2005.03.20

1970년대 초~중반,

그 당시 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군 출신 특채 군사교육 전담

교련 교사들에 의한 교련 과목에 들어 있는 제식 행군훈련, 총검술 훈련,

화생방 훈련에 이미 혼이 나간 아이들이

(교련복에 교련화,각반,모자.., M-1총까지 들고 운동장에

최대한 신속하게 완전무장(?) 집결해야 했던 그때,

저는 이 시간만큼은 언제나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또 다른 아침 조회시간에 어김없이 지금과 같은 구령에 맞춰서

집단체조를 하던 그때의 그 모습이 지금도 鮮然하게 떠오릅니다. 

비록 이 국민체조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7년도 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집단체조지만,

 1970年代를 관류(貫流)하던 官制 국민계몽운동으로 여러가지 集體行事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국민체조도 역시 이런 시대적인 배경이 있었지요..

[새로 붙이는 글입니다]

 

"국민체조 시∼작!" 그 목소리…유근림 경희대 명예교수 별세/

입력 : 2025-03-11 16:54:14

 

"국민체조오∼ 시∼작! 하낫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둘 셋넷 다섯 여섯 일곱 다리운동∼."

1977년부터 전국에 보급된 '국민체조' 속 목소리 주인공인 유근림 경희대 체대 명예교수가 11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3세.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춘천사범학교와 경희대 체대를 졸업한 뒤 1961년부터 경희대 체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강단에 섰다. 1970∼1983년 대한체조협회 부회장, 1974년 대한체육회 이사, 1977년 대한체육학회 부회장, 1982년 대한체조협회 부회장을 거쳐 1998년 정년퇴직했다.

국민체조는 정부가 1977년 3월부터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서 학교를 중심으로 보급했다. 특유의 힘찬 구령과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가벼운 12개 동작으로 이뤄졌다. 국민체조를 기획한 고인은 국민체조 속 '힘찬 구령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1999년 '새천년 건강체조'로 대체됐다가 2010년 '국민건강체조'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부 학교에선 비교적 최근까지 국민체조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니투데이는 2011년 고인을 직접 만났을 때 녹음된 목소리가 평소 발성이었냐고 묻자 "평소엔 전혀 그런 말투를 쓰지 않았다"며 "당시 체조선수들을 불러 20명 정도 되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국민체조 동작을 시키고 직접 구령을 붙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민체조를 만든 대가로 따로 보수를 받은 적도 없다고 보도했다.

매일신문은 2019년 기사에서 국민체조의 배경음악은 김희조(1920∼2001) 전 경희대 음대 교수가 작곡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체조', '도설 매스게임', '체육의 기조와 원리', '체조경기' '기계체조' 등 저서를 남겼고, 대한민국 체육상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홍숙종씨와 2남1녀(유수열<미국 거주>·유선희<관세청 관세인재개발원 원장>·유승열)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 13일 오전 5시, 장지 강원 춘천시 선영.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