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7
7월 27일 오늘, 停戰協定으로 전쟁이 끝난 뒤 십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1960년대 초반...
책보자기 걸머맨 채 학교 가는 길에서 새벽 일찍 논(답畓)일 벌써 끝내고 집으로 향해 가는 길의 동네 할아버지, 어르신들에게 "아침 잡샀능교?.(아침식사는 하셨습니까?)"라는 인사가 당연시 됐던 그 '늪 같던 기아(飢餓)의 時代'에, 우리는 자유당 정권 내내 기어코 이루고 말리라~라는 北進統一의 슬로건을 잇는 공화당 정권의 勝共統一과, 교과서에 실려있던 노래 '무찌르자 오랑캐~'를 배우면서 끝없이 북한괴뢰군들에게 무자비한 敵意를 불태워라~ 그렇게 씩씩한 '大韓男兒'가 되어라...는 나라의 큰 어르신과 "착한 어린이가 되려면 나랏님이 시키는대로 해야만 된단다~!" 이르시는 학교 선생님과 주위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목청 높혀 愛國歌謠(?)인 이 童謠를 불렀습니다.
그 시절, 그러면 어른들은 과연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요?
그 분들도 우리 어린이들처럼 필시 滅共統一을 부르짖는 노래를 불렀어야 마땅했을 터인데 <전선야곡> <삼팔선의 봄>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굳세어라 금순아>나, <달 뜨는 휴전선>이니 <원한의 삼팔선> <원한의 휴전선>...(이 많은 分斷線의 恨을 어이하리야).... 이런 感性 어린 노래를 들으시면서 조국의 슬픈 현실에 대해 또 어떤 悔恨에 잠기셨을까요?...
草芥.. 풀과 티끌, 지푸라기
코흘리개 쌍팔년(雙八年 乙未生) '大韓男兒'는 학교에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시간에 ' 草芥'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배운 저 戰時歌謠가 5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1절의 노랫말은 잊혀지지가 않는데...
지금 70대 초반 나이 할머니들이 여자 아이였을 때 놀던 '고무줄 놀이'에 왠 男兒냐... 그래서 "대한 너머 가는데 저기로구나~" 그렇게 가사를 바꾸어 부르기까지 했는데...
승리(勝利)의 노래 (1951)
이선근 작사, 권태호 작곡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버전 음원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유튜브에 있는 음원으로 듣습니다.
1.
무찌르자 오랑캐 몇 百萬이냐/
大韓男兒 가는데 草芥로구나/
(후렴)
나아가자 나아가 勝利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 勝利의 길로/
2.
쳐부수자 共産軍 몇 千萬이냐/
우리 國軍 진격에 섬멸 뿐이다/
3.
용감하다 UN軍 우리와 함께/
지쳐간다 敵陣에 맹호와 같이/
*蛇足*
노래가사를 쓴 만주국 고위관료 출신(만주국협화회 전국연합회의 조선계 대표)의 대표적인 친일파 지식인 史學者 이선근(李瑄根)이 광복 이후 귀국한 뒤 이승만 정권의 프로파간다가 되어 '反共'을 팔아 떵떵거리며 살더니, 박정희 정권 때는 '박정희의 역사선생'이 되어 維新의 사상적 체계화를 만든 功勞로 문교부장관까지 했다지 아마...
祖國의 독립으로 반드시 처단됐어야 했으나 남북분단으로 오히려 天壽를 누리고 年年歲歲 代를 이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된 이들은 惡質親日派..
그러면 조국해방을 위해 '一族의 安危를 무릅쓰고 목숨도 草芥처럼 버려야 했던' 義로운 民族主義者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