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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김영자)- 님이여 나의 곁에 (64년 심포니)... 조경수의 행복이란 원래 오리지널 곡/ 작곡가 고 유금춘 선생님의 증언

고향모정 2023. 11. 4. 19:30

오~ 至高至純한 내 사랑이여 <님이여 나의 곁에>...

2009.04.27

 

*먼저 이 글을 쓰게 된 당시의 일들을 떠올려 봅니다.

이 글은 부산을 떠나지 않고 60년대 중반까지 오랫동안 활동하신 원로작곡가 故 유금춘 선생님( 兪琴春 1931~2006)이 생전에 이야기했던 당신의 주장을 구술(낙화십년 김종욱 형과 함께)한 내용에 의해, 100% 여과없이 그대로 옮겨 적은 것임을 회원님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여중생 문필연(동래여중 3학년)이 유금춘 선생님을 통해 데뷔, 60년대를 대표하는 저음가수 문주란이 되었듯이 선생님은 부산 대중가요계와 가수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신 분입니다. 

계주생면(契酒生面).., 남의 물건으로 자기가 생색을 내는 이 이야기의 실체는 당사자들의 진실공방으로 밝혀내면 될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유금춘, 이준례 양씨(兩氏)가 이미 고인이 되신 관계로 저 자신도 자세한 내막을 잘 알 길이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사정이 이름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이미 저작권협회에서 이준례 씨가 이 곡의 원래 주인이라고 인정하였다 하더라도, '만에 하나라도 유금춘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잃어버린 가요의 신원회복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제 나름의 소신에 따랐기 때문입니다.

"님이여 나의 곁에"의 원작자 논쟁의 승자(勝者)는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가능성이 100%이듯이, 패자(敗者) 또한 100%인 이 '올 오어 낫씽 게임'의 진실 여부를 통해 제가 소망하는 것은, 가요계에 아직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도작(盜作)과 조작(造作)이 다시는 일이나지 않기를 바라며 떳떳하게 만들어진 모든 노래가 우리들 곁에서 언제나 꿈과 희망의 길로 이끄는 향도가(嚮導歌)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봅니다. 

밑의 답글에도 말했듯이, 세상이 그저 마냥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우리들 양심이 허락치 않는 걸 보니 어떠한 일이 있드라도 아직은 세상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치는 말아야 할 듯 합니다. 

 

 

"님이여 나의 곁에"

 

1.

행복이 무엇인지 이젠 알겠어요

사랑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어요

이 생명 영원토록 임에게 바치오니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계셔줘요

 

2.

사랑이 중한 것도 이젠 알겠어요

사랑 앞엔  슬픔도 눈물도 없어요

어두운 내 가슴에 찬란한 불을 밝힌

님의 품에 살고 싶소 영원히 있고 싶소

 

1964 심포니 SL-12015, 10인치 LP.. 高校 三年生 [追憶의 學窓時節]/ 兪琴春 作曲集

 

Side A

1. 남의 신부 되었네 (성춘남)

2. 남자란 모두 그런가요 (문필연- 문주란)

3. 오징어 타령 (성춘남)

4. 님이여 나의 곁에 (최창희)

5. 물방앗간 처녀 (송향일)

6. 25시 (황성웅)

 

Side B

1. 고교 3년생 (성춘남, 심포니합창단)

2. 봄놀이 가세 (성춘남)

3. 강나루 처녀 (김종기)

4. 남포동 네거리 (남상규, 최창희)

5. 김삿갓 (성춘남)

6. 외로운 가을 밤 (송향일)

 

 

고향모정 (2009-04-27 23:01:47)
 이 노래는 60년대 초중반, 그 당시 부산을 중심으로 왕성한 작곡 활동을 하시던 "유금춘" 선생님(兪琴春, 1931~2006)이 1964년에 발표하신 곡입니다.
"유금춘" 선생님은 '백야성' 님이 부른 '도꾜에서 온 편지'를 작곡하셨고, 그리고 당시 무명의 중학생이던 '문필련(나중의 문주란)"孃에게 "남자란 모두 그런가요"와 "크리스틴 킬러" 두 곡을 주어서 실지로 文珠蘭을 가요계에 데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그 당시 가요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던 유금춘 선생님은 역시 그때 아세아 레코드사에서 크게 활약하시던 부산 출신의 작곡가 김종유 선생님(1933~2008), 밀양 출신으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부산지부장으로 계시는 김상호 님(이 분의 사촌 여동생이 은방울 자매 작은 방울 '김향미' 님)과는 비슷한 연배로 아주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이런 연유로 낙화십년 김종욱 형과 빈번하게 왕래하던 김상호 지부장님을 통해서 저도 세 분을 뵐 수 있었고 덩달아 당시 부산 연예계를 중심으로 50년대 이후 우리 대중가요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분들과의 우연한 조우(遭遇)는 제가 지금까지 [고향모정 옛날 양판, 오리지널 음반을 틀다] 를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도 아울러 밝히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이제 모두 고인이 되셨는데 오늘 이 글을 다시 재포스팅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네 분들께 심심(甚深)한 조의를 표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참 어이가 없거나 황당한 일들도 많이 당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우리 가요계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 그런 일을 또 당한다고 해도 결코 이상한 일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런 명백한 정황이 있는 노래마저 나중에 다른 사람이 가사 몇 줄, 멜로디 몇 소절을 바꾸어서 자기가 만든 노래라고 엉뚱하게 저작권협회에 염치도 없이 올린다면 이건 정말 아니겠지요?...

지금은 이미 밝혀진 내용으로 거의 수정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 김문응 작사, 길옥윤 작곡, 쟈니리의 ‘내일은 해가 뜬다’만 해도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만 하드라도 작사 작곡 미상, 들국화가 민간에 떠도는 노래를 채보(採譜)해서 취입한 것이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해프닝을 가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는 이 노래도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도 좋아 歌謠史에 영원히 남을 명곡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곡을 만드신 분이 이미 몇 년 전에 故人이 되신 관계로 생전에 이 노래를 자기의 노래라고 주장하지도 못하신 체 그냥 노래 한 곡을 영영 잃어버리고만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위 사진에 있는 심포니레코드 10인치 LP음반에 버젓이 원작자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1980년도 초반, 그 당시 사랑을 이야기하던 戀人들이라면 어김없이 긴 호흡으로 같이 노래 불렀을 이 不朽의 名曲 <님이여 나의 곁에 (잘 아시다시피 이 곡은 ‘이준례’ 작사 작곡,  ‘행복이란’ 이라는 曲名으로 조경수가 노래 하였지요..)>

그런데 제가 들어서 기억하는내용은 ‘1964년, 그 당시 부산의 오메가 레코드사의 대표 작곡가로 계시던 <유금춘>선생님이 심포니레코드사를 통해 무명가수 <최창희(유 선생님 말로는 '라창희'로 기억..후에 전해지는 말로는 배우 김지미의 사촌언니 '김영자'라는 說이 있드군요)>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했고 그 이후 이 분이 이 노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든지 아니면 잊고 있었든지(이 노래의 작사자를 유금춘 선생님 자신도 잘 모르고 계실 정도였으니..) 모든 것이 이준례라는 엉뚱한 사람의 소유라고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이후에 인세 문제로 이 곡에 대한 소유권 변경을 요청했으나 그 과정을 기다리는 동안 결국은 결과를 보지 못하고 그만 돌아가신, 그런 사연 많은 노래가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제가 들은 내용은 아니지만 유금춘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당대 최고의 배우 ‘김지미’를 위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던 모 영화 제작자의 부탁으로 영화주제가로 만든 노래라고 하며, 나중에 최무룡. 김지미 兩氏가 다시 같이 듀엣으로 불렀다는 말을 생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했다고 합니다.)

 

 

專門家 (2009-04-27 23:22:09)

고향모정님! 어서 오시오! 반갑소이다^^
오늘은 4월의 마지막 월요일이었는데 보람있게 보내셨는지?
오늘 정말 기막힌 곡을 올려주셨구려!
지기도 1979년에 "행복이란"이 당시 70세인 "이준례"라는 할머니가
만든 노래라고 해서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신문에도 기사화해서 보도 되었기에 그렇게 믿고 말았지요.
지금 노래를 들어보니 완전히 남의 노래를 자신의 곡으로 가로챈 상황이군요!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졌네요.
당시엔 우리도 후진국이었나?.. ^^
"유금춘"씨나 "이준례"씨 모두 이젠 세상을 떠났으니 어찌해야할지..
그러나 누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주어야 할 것 같군요.
덕분에 "최창희"의 "님이여 나의 곁에" 즐겁게 잘 감상했소이다.
어디서 이렇게 귀한 노래를 찾아오셨는지?..
역시 모정님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회원님들과 함께 감상하고 싶군요.
감사드리며 이 밤도 편안한 밤 되시기를!... ^^

 

고향모정 (2009-04-27 23:52:18)

전문가 님,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지요?
저는 요즘 청림출판사가 펴낸 우리나라 최고의 사마천의 "사기" 해석 전문가
'김영수'선생님이 쓴 <치명적인 내부의 적, 간신>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이 너무나 좋아서 벌써 再讀을 거쳐서 三讀 째 접어들었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 쓰여있는 '宋史의 유일지傳'에 있는 다음의 글이 너무도 인상적이군요..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군자가 여럿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일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
거짓이 진실을 덮고 불의가 정의를 윽박지르는 가관, 그 표리부동(表裏不同)하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者들의 씁쓸한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이 노래를 들으면서
또 위의 저 글을 새깁니다.

계주생면(契酒生面).., 남의 물건으로 자기가 생색을 내는 이 웃기는 이야기가 아직도 횡행하는
세상이 그저 마냥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우리들 양심이 허락치 않는 걸 보니 아직은 세상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치는 말아야 할 듯 합니다.
늘 고마워 합니다. 감사합니다^^*...

 

청계 (2009-04-28 21:34:01)

이런 경우들은 아마 제법 있을 듯 합니다.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노래가 발표곡의 몇분의 일도
안되는 수준이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곡이
남의 이름으로 등재가 되어 있는 경우도 많겠지요.
하긴 표절의 경우만 봐도 완전 같은 곡임에도
표절판정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치요...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귀한 곡 즐감합니다~~

 

고향모정 (2009-04-29 22:36:58)

 요즘은 까치보다도 까마귀가 더 吉鳥라고 하드군요.
어릴 때 배웠던 상식을 여지없이 깨어버리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상궤(常軌)에 벗어나는 행동을 일삼은 일부 못된 인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청계님의 말씀처럼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노래가 발표곡의 몇분의 일도 안되는 수준이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곡이 남의 이름으로 등재가 되어 있는 경우가 그 얼마나 많을까마는,
그래도 지금 이 "님이여 나의 곁에" 같은 명백한 절도(표절보다 더한 것이라서) 행위로 인해
잃어버린 권리는 정황이 옳다고 판단되면 사회 정의 차원에서라도 마땅히 바로 정정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여봅니다.

조경수의 오늘을 있게한 이 노래가 이런 사연을 가진 곡이라는 것을 그 당시 이 노래를
부른 당사자인 조경수씨는 아마 잘 몰랐겠지요?...
그나저나 귀 밝고 눈 밝은 이준례 할머니의 멋진 새치기로 대박을 쳤건만 사실을 알고나니

안타까워서 서러운 노래, 결코 전혀 행복하지 않은 '행복이란' 곡명의 노래를
오리지널 넘버라고 알려진 이 노래, '님이여 나의 곁에'에 오버랩 시켜 귀를 세워 들어봅니다.
..역시나 우울하군요 ㅠ~...